『동아일보』 1931년 4월 25일자에는 최송설당과 김천의 만남을 “적막(寂寞)의 김천을 활기(活氣)의 김천으로, 초야(草野)의 김천을 이상(理想)의 김천으로”라고 하였다. 또 『동아일보』 1939년 8월 17일자에는 최송설당의 “유업(遺業)은 천추(千秋)에 그 빛을 남길 것이고, 공덕(功德)과 방명(芳名)은 학교[김천고등보통학교, 현 김천중학교·김천고등학교]의 운명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