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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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店里 |
영어음역 | wangjeom-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황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순분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옛날 주민들이 유황을 캐고 이를 정제하여 나라에 바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이었으므로 황점(黃店)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성주군 내증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원황점(元黃店)·대목[竹項]·초막골[草洞]·돌마당[石場]·문예(文禮)가 통합되어 김천군 증산면 황점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증산면 황점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증산면 황점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쪽은 형제봉, 서쪽은 단지봉, 북쪽은 새목양지 등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동쪽으로 목통천이 흐른다.
[현황]
황점리는 증산면 최남단에 있는 마을로 증산면 소재지에서 약 7㎞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11.6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58세대에 99명(남자 51명, 여자 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장전리, 서쪽으로 수도리, 북쪽으로 금곡리, 남쪽으로 목통령을 사이에 두고 거창군 가북면과 이웃하고 있다. 황점리 한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김해 김씨 집성촌이다. 농경지가 거의 없어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잎담배와 인삼을 주로 재배한다.
자연 마을로는 원황점·대목·초막골·돌마당·문예 등이 있다. 원황점은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온다. 김천을 둘러본 박문수가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개금으로 넘어가기 위해 황점 뒤 목통령에 접어들었는데 워낙 험준한 고개인지라 그만 탈진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를 목격한 마을의 한 부인이 자신의 젖을 먹여 살렸고, 박문수는 부인에게 소원을 물었다. 부인은 황점 사람들이 대대로 독한 유황을 캐고 나라에 바치는 일이 지극히 고단하니 이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하소연하였고 박문수는 이를 조정에 보고하여 유황을 상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원황점이라는 지명도 원래 유황을 캐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죽목은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붙인 이름이고 초막골은 옛날 마을 사람들이 풀로 지붕을 얹은 초막집에 살아서 붙인 이름이다. 문예는 옛날 글을 잘하는 선비가 살아서 붙인 이름이다. 문예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하씨(河氏) 성을 가진 인색한 부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한 승려가 찾아와 마을 뒤에 명당인 청룡혈의 허리를 잘라 도랑을 내어 논에 물을 대면 부자가 된다고 하였다. 이를 그대로 믿은 부자는 산허리를 잘라 물길을 내고 자신의 논에 물을 대었더니 대목 앞 하기소라는 물웅덩이에서 푸른빛의 말이 솟아나와 슬피 울고는 만폭정폭포에 빠져죽었고, 그 뒤로 하씨 부자는 망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문예 뒤에 돌이 많기로 유명해 돌마당 또는 석장(石場)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이 밖에도 골짜기마다 무내미·안무내미·새목양지·큰골·장자터 등 작은 마을들이 산재해 있었고 무내미 뒤에는 일제 강점기까지 금을 캐던 큰 금광이 있어 사람들이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모두 폐동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