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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388
한자 孝行-
영어음역 Hyohaengui Maeul
영어의미역 The Village of Filial Piety
이칭/별칭 효자동,효자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대덕면 덕산리|지례면 교리|어모면 옥율리|봉산면 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마을
면적 5.6㎢[옥율리]|1.94㎢[신리]|2.24㎢[교리]|15.51㎢[신곡리]|7.5㎢[덕산리]
가구수 154가구[옥율리]|157가구[신리]|196가구[교리]|113가구[신곡리]|84가구[덕산리]
인구(남, 여) 380명[옥율리]|408명[신리]|454명[교리]|264명[신곡리]|132명[덕산리]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대덕면·지례면·봉산면·어모면에 있는 효자 마을.

[개설]

김천 지역은 예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효자, 효녀, 효부를 배출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큰 효자를 배출한 마을을 효자동으로 부르며 효를 칭송해 왔다. 김천 지역의 큰 효자에 대한 기록은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김천시지(金泉市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효자로는 김석용(金碩龍), 이세간(李世幹), 김성배(金聖培), 강우창(姜遇昌), 조응방(曺應邦), 이영보(李英普), 김시창(金始昌), 김용식(金溶植), 문맹곤(文孟坤), 박구년(朴龜年), 박수(朴壽), 이경구(李慶求), 임우춘(林遇春), 조세붕(曺世鵬), 문랑(文琅)효랑(孝琅) 등이 있다.

이세간성주 이씨로 아버지가 병이 깊어져 곡기를 끊자 날마다 하늘에 완쾌를 빌었는데 문득 엄동에 집 앞에 살구꽃이 피고 여름 과일이 맺히니 모두들 하늘이 낸 효자라 칭송하였다. 1702년(숙종 28)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축대 아래에서 절을 하니 무릎 닿는 곳에 잔디가 살지 못하고 땅이 깊이 패었다. 또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주위를 돌았는데 여막 아래에 앉았다 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강우창광해군 때의 이름 난 효자로 아버지가 병이 들자 인분(人糞)을 맛보아 병의 경중을 헤아리고 병세가 위중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시묘를 할 때 얼마나 통곡을 했던지 산소의 흙이 눈물에 절어 짜고 무릎을 구부린 지점에 깊은 구멍이 패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강우창이 세상을 떠나고 200여 년 뒤인 1862년(철종 13) 지역 유림이 상소하니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김경직은 어릴 때부터 천성이 순후하고 부모의 명을 하늘과 같이 섬기는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하루는 아버지 김석용과 함께 대덕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큰 호랑이가 나타나 아버지를 공격하니 온몸으로 막았으나 역부족이었다.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원수를 갚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 후 대덕산으로 들어가 곳곳에 함정을 파고 호랑이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세 번째 잡은 호랑이가 아버지를 해친 호랑이인지라 껍질을 벗겨 아버지 묘소에 고한 후 제를 올렸다.

조응방은 앉은뱅이였던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며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부친상을 당하자 3년간 시묘를 하였다. 1875년(고종 12) 지역 유림의 청원으로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다.

윤은보서즐은 후손이 없는 스승 장지도를 극진히 봉양하고 사후 지극 정성으로 시묘를 하였다. 이들의 효행이 실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따르면 “지례현윤은보서즐장지도에게 배웠는데 임금과 어버이와 스승을 하나같이 섬기기로 결의하고 성심껏 모셨고 그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함께 시묘를 했다. 그 도중에 윤은보가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을 지키다가 회오리바람이 불어 날아갔던 향로를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이적이 일어났다. 스승을 어버이와 같이 섬기고 예를 다한 윤은보서즐에게 1432년(세종 14) 정려문과 벼슬을 내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명칭 유래]

조마면 신곡리조마면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하는 여러 마을을 통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인 만큼 새롭게 면모를 일신해 발전하자는 염원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어모면 옥율리는 노옥(老玉)의 ‘옥(玉)’자와 율리(栗里)의 ‘율(栗)’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마을 앞 하천의 이름을 따서 자랑내 또는 긍천(矜川)이라고도 한다. 효자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마을 옆의 냇가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효자 강우창을 배출한 이후 효자동으로 불렸다.

대덕면 덕산리김경직의 효행으로, 봉산면 신리는 효자 강우창의 효행으로 효자동으로 불렸다. 지례면 교리는 1426년(세종 8) 마을에 지례향교가 세워지면서부터 교동(校洞)·교촌(校村)·향교마 등으로 불렸다. 1914년 인근 범밧골[富坪洞]을 합하여 교리로 고쳤고 예부터 스승을 부모처럼 봉양해 『삼강행실도』에 오른 윤은보서즐의 효행으로 효자동으로 불렸다.

[자연 환경]

김천 지역 효자 마을 대부분은 산촌에 자리 잡고 있다. 어모면 옥율리난함산 자락으로 김천에서 상주로 연결되는 국도 3호선 도로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봉산면 신리는 극락산 아래에 자리한 큰 마을로 직지천 변에 비옥한 평야가 많고 경부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다. 지례면 교리는 거창, 무주, 영동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대덕면 덕산리는 무주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대덕산 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교통이 불편하며 농경지가 좁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다.

[현황]

김천시에 있는 효행의 마을 가운데 대덕면 덕산1리에 준공한 효행의 마을은 2010년 11월 말 현재 전체 가구 수 33호로 해발 450m에 자리 잡고 있다. 예부터 효자·효부가 많아 장릉참봉 김경직 효행비, 밀양 박씨 효열비, 김해 김씨 열부비, 경주 이씨 사적비 등 효행비와 열녀비가 세워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김천시에서는 특수 시책으로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행하면서 2009년 8월 18일 ‘효의 행적을 찾아서’라는 사업 명으로 덕산1리를 선정하여 3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마을에 흩어져 있는 효행비와 열녀비에 안내판을 설치하였다.김녕 김씨 문중 재실인 성덕재와 경양재 주변을 정비하였고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으로 이어지는 경계 지점까지 꽃길을 조성하는 등 대덕산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깨끗한 마을로 가꾸었다.

한편 덕산리는 호두가 많이 생산되는 특징을 살려 수확기에 호두 따기, 호두까기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경로 효친 사상을 되새기는 마을 축제를 가질 계획이다.

각 효행의 마을 관련 유적으로 어모면 옥율리효자 강우창 정려각, 봉산면 신리조응방 효자각, 지례면 교리양효위사 윤은보 서즐 정려각, 대덕면 덕산리장릉참봉 김경직 효행비, 조마면 신곡리의 의호신령비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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