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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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 |
영어음역 | Jo Sebung |
이칭/별칭 | 효행,효도,효부,효녀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송영호 |
[정의]
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효성으로 어버이를 잘 섬긴 자녀.
[개설]
효자는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기는 자식을 일컫는다. 김천은 예로부터 충효의 고장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효자, 효부, 효녀를 배출했는데 이에 수반된 정려각, 효행비 등의 유적이 다수 남아 있으며 큰 효자를 배출하여 마을 지명이 효자동으로 개명된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김천 지역 효자, 효부, 효녀에 대한 기록은 『품천지(品川誌)』, 『금릉승람(金陵勝覽)』,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교남지(嶠南誌)』, 『금릉군지(金陵郡誌)』 등의 자료에 남아 있는데 특히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후손이 없는 스승을 부모와 같이 섬긴 지례현의 윤은보(尹殷保)와 서즐(徐騭)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현황]
1. 김천에서 배출한 효자
1) 조마면 출신: 이호인(李好仁), 권갑(權玾), 권기(權耆), 권수(權璲), 이세간(李世幹), 박무현(朴武鉉), 배사도(裵師道), 강여송(姜汝松), 강옥선(姜玉善), 강용순(姜用淳), 강운성(姜雲晟), 강철순(姜哲淳), 강치선(姜致善), 강태규(姜泰奎), 강태덕(姜泰德), 강태수(姜泰秀), 강휘겸(姜彙謙), 강휘천(姜彙天), 배상완(裵尙琓), 배선규(裵善奎), 배흥립(裵興立) 등
2) 남면 출신: 강원선(姜元善), 이준영(李俊榮) 등
3) 감문면 출신: 김갑생(金甲生), 김용식(金溶植), 김해종(金海宗), 윤범원(尹範源), 윤우탕(尹遇湯), 이영진(李榮鎭), 임우춘(林遇春) 등
4) 감천면 출신: 이환기(李煥基), 이중기(李中基), 오일근(吳一根), 오찬주(吳纘柱), 박장환(朴長煥), 김한영(金漢英), 박세응(朴世應), 문랑효랑(文琅孝琅) 등
5) 대덕면 출신: 장응규(張應奎), 신충범(愼忠範), 신필검(愼必儉), 신필성(愼必誠), 김홍운(金弘運), 이응상(李應祥), 정국징(鄭國徵), 정량흠(鄭良欽), 정현상(鄭賢相) 등
6) 아포읍 출신: 김건두(金建斗), 김용목(金容睦) 등
7) 개령면 출신: 임비(林棐), 유사원(劉泗源), 김종언(金鍾彦), 양병학(梁秉鶴), 김준배(金俊培), 김병채(金秉采), 김의달(金義達), 김이경(金以涇), 김우(金堣), 김운석(金雲錫) 등
8) 지례면 출신: 박구년(朴龜年), 윤규행(尹奎行), 신상의(愼相義), 박기찬(朴基瓚), 문영근(文永根), 문용락(文龍洛), 문채오(文采五), 김광택(金光澤), 김석룡(金碩龍), 김성배(金聖培), 윤은보(尹殷保), 이희규(李僖奎), 전병옥(全炳玉), 전병현(全炳賢) 등
9) 어모면 출신: 장사옥(張士玉), 강우창(姜遇昌), 박성하(朴聖夏), 안훈택(安勳宅), 편상옥(片相玉), 편석렬(片石烈) 등
10) 봉산면 출신: 김시창(金始昌), 조응방(曺應邦), 전순기(全順己), 정선행(鄭善行), 정홍기(鄭洪基), 조세붕(曺世鵬), 조천민(曺天民) 등
11) 부항면 출신: 이영보(李英普), 김정호(金正鎬), 김우상(金于相), 이명휘(李明暉), 이병화(李秉和), 이우연(李愚淵), 이우철(李愚澈), 이우항(李愚恒), 허전(許銓), 허준(許儁) 등
12) 대항면 출신: 박사삼(朴事三), 김홍주(金弘宙) 등
13) 구성면 출신: 최한열(崔翰烈), 이현주(李鉉籌), 이현진(李鉉軫), 이장원(李長源), 이종성(李宗性), 이우균(李雨均), 이성간(李成幹), 이의복(李宜福), 이수부(李遂溥), 이수택(李遂澤), 이병서(李秉瑞), 이병온(李秉醞), 이득배(李得培), 이만성(李晩成), 이각균(李珏均), 이구(李坵), 여기룡(呂記龍), 여석건(呂錫建), 여석주(呂錫珠), 여석황(呂錫璜), 송동수(宋東洙), 송민수(宋敏洙), 송병화, 송일영(宋日英), 송진규(宋進圭), 여영한(呂永漢), 송필석(宋必錫), 송흠해(宋欽海), 득옥(得玉), 김용식(金溶植), 문맹곤(文孟坤), 박구년(朴龜年), 박수(朴壽), 이경구(李慶求), 김용도(金溶度), 이상화(李祥和) 등
14) 김산군 출신: 최동순(崔東舜), 최동진(崔東鎭), 최득종(崔得宗), 최영구(崔永九), 최하대(崔河大), 이대년(李大年), 박진호(朴璡浩), 박창운(朴昌運), 박경노(朴敬魯), 박광천(朴光天), 김현배(金賢培), 백기록(白基祿), 백봉양(白鳳陽), 백상정(白尙淨), 백시형(白時珩), 백우인(白禹寅), 서유지(徐有智), 성면석(成冕錫), 손석유(孫碩裕), 이석모(李錫模), 이소녀(李少女), 이승조(李承祚), 이현식(李鉉湜), 이면성(李綿成), 이문식(李文植), 이사눌(李思訥), 이사인(李思認), 이상익(李尙益), 이상필(李尙苾), 이응정(李應靖), 장동홍(張東鴻), 장병환(張炳煥), 이종석(李鐘奭) 등이 있다.
2. 김천에서 배출한 효부
시부모에게 효행을 다한 효부(孝婦)로는 김녕 김씨(金寧金氏), 일선 김씨(一善金氏), 팔거 도씨(八居都氏), 성주 도씨(星州都氏), 수성 라씨(壽城羅氏), 남평 문씨(南平文氏), 순천 박씨(順川朴氏), 밀양 박씨(密陽朴氏), 성산 이씨(星山李氏), 진주 강씨(晉州姜氏), 김해 김씨(金海金氏), 문화 류씨(文化柳氏), 풍천 임씨(豊川任氏), 성산 배씨(星山裵氏), 수원 백씨(水原白氏), 이천 서씨(利川徐氏), 달성 서씨(達成徐氏), 창녕 성씨(昌寧成氏), 은진 송씨(恩津宋氏), 거창 신씨(居昌愼氏), 평산 신씨(平山愼氏), 순흥 안씨(順興安氏), 남원 양씨(南原梁氏), 영월 엄씨(寧越嚴氏), 성산 여씨(星山呂氏), 함양 오씨(咸陽吳氏), 해주 오씨(海州吳氏), 단양 우씨(丹陽禹氏), 연안 이씨(延安李氏), 경주 이씨(慶州李氏), 영천 이씨(永川李氏), 합천 이씨(陜川李氏), 전주 이씨(全州李氏), 벽진 이씨(碧珍李氏), 인동 장씨(仁洞張氏), 연안 전씨(延安全氏) 등이 있다.
3. 김천의 대표 효자
1) 이세간: 성주 이씨로 부친이 병환이 깊어져 곡기를 끊자 날마다 하늘에 완쾌를 빌었는데 문득 엄동에 집 앞 살구꽃이 피고 여름 과일이 맺히니 모두들 하늘이 낸 효자라 칭송했다고 한다. 1702년(숙종 28)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간 시묘살이를 하는데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날마다 축대 아래에서 절을 하니 무릎 닿는 곳에 잔디가 살지 못하고 땅이 깊이 파였다고 한다. 또 밤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주위를 돌았는데 공격을 하지 않고 여막 아래에 앉았다 가기를 반복하니 사람들은 하늘이 효자를 지켜 주기 위해 산신이 호랑이를 보냈다하며 마을 이름을 효자동이라 고쳤다.
2) 강우창: 광해군 때의 이름난 효자로 부친이 병환에 들자 인분(人糞)을 맛보아 병의 경중을 헤아리고 병세가 위중할 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리운 효자로 인근에 칭송이 자자했는데 부친의 사후 시묘살이를 할 때 얼마나 통곡을 했던지 산소의 흙이 눈물에 절어 짜고 무릎을 구부린 지점에 깊은 구멍이 생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효자가 사망하고 2백년 후인 1862년(철종 13)에 지역 유림에서 상소하니 나라에서 정려가 내렸다.
3) 조응방: 앉은뱅이였던 부친을 극진히 봉양하며 병환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부친상을 당하자 3년 간 시묘하여 1875년 지역 유림의 청원으로 정려가 내렸다.
4) 박수와 손자 박상태(朴尙泰), 증손 박천일(朴天一): 순천 박씨 집안의 효자 3인을 삼세효(三世孝)로 일컫는다. 특히 박천일은 모친이 병환이 들어 꿩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 하늘에 빌었더니 엄동에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수년간 병석에 든 부친의 대변을 맛보아 가며 시탕(侍湯)했다. 상을 당하여는 더욱 애통해 하고 예를 다하였다.
[관련 유적]
김천 지역에는 효행과 관련된 인물이 많고 이들의 행적이 전설화된 사례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효 관련 유적은 정려각과 효행비, 그리고 효행과 열행을 함께 행한 이를 기리는 효열각의 형태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개령면 덕촌리의 오여권 처 성주 이씨 효열각, 농소면 봉곡리의 김해 김씨 정려각, 어모면 옥율리의 효자 강우창 정려각, 봉산면 신암리의 김시창 효열각, 봉산면 신리의 조응방 효자각, 감천면 도평리의 문랑·효량 정려각, 조마면 신곡리의 박빈 처 함양 오씨 효열각, 부항면 지좌리의 이영보 효자각, 지례면 교리의 윤은보·서즐 정려각, 대덕면 덕산리의 김경직 효행비 등을 들 수 있다.
윤은보·서즐 정려각은 후손이 없는 스승을 극진히 봉양하고 사후 시묘를 행한 두 제자의 행적을 기려 정려를 내린 보기 드문 경우로써 이들의 행적이 은보감오(殷保感烏)라는 주제로 『삼강행실도』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