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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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金洞敎會 |
영어음역 | Hwanggeumdong Gyohoe |
영어의미역 | Hwanggumdong Presbyteri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공원길 146[황금동 4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원자 |
설립 | 1903년 2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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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183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 40 |
성격 | 교회 |
설립자 | 부해리 |
전화 | 054-432-5775 |
홈페이지 | 황금동교회(http://www.hgdpc.com)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황금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설립 목적]
황금동교회는 미국 북장로회에서 1899년 우리나라에 파견한 부해리(H.M.Bruen) 선교사가 경상북도 서북부 지역을 담당하면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1901년 아포읍 송천교회를 설립한 후 김천 시내 지역의 선교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01년 부해리 선교사가 아포 송천교회를 설립한 후 1903년 김천 시내 지역 선교를 위해 전도사 2명을 황금동으로 파견해 황금동 183번지 박상순의 자택 사랑방에서 최초로 예배를 보았다. 1907년 집을 매입하고 가건물을 건립해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김천 개신교의 역사를 열었고 1922년 132㎡ 규모로 확장 신축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1953년부터 재건 사업을 시작해 1957년 615㎡ 규모의 교회와 교육관을 세웠고 1988년 3월에 4층 2083㎡ 규모로 교회를 신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황금동교회는 김천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김천 개신교회의 효시로서 창설 당시에는 조선예수교 경상북도노회에 속했고 1952년 조직된 경서노회의 모체 교회가 되었다. 또 1919년 김천 지역 3·1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는데 당시 황금동교회 소속의 집사 김충한과 신도 김수길, 장로 최용수, 직원 한명수 등 8명이 교회에 모여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다 사전에 발각되었다. 그리고 장로 석수일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선교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한일중학교 전신인 배영학원을 운영했고 1974년부터는 김천유치원을 운영했다. 1989년 장애인선교회를, 1991년 시각장애인부를 조직했으며 1995년 신음동에 김천시민교회를, 199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황금동교회를 개척했다.
[현황]
2005년 12월 부임한 이현세 목사와 김진섭· 오종대·전중웅 부목사가 목회를 주관하며 경로대학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행복초청 나눔 행사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교회 조직으로는 당회와 공동의회, 제직회, 구역장, 권찰회, 찬양대, 교회학교, 자치회 등이 있다. 2010년 10월 말 기준 신도 수는 55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