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서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1946
한자 書堂
영어음역 Seodang
영어의미역 Confucian Academies
이칭/별칭 학당,학방,숙(塾)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임삼조

[정의]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설립되었던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서당은 삼국 시대부터 내려오는 글방으로 학당·학방·숙(塾)이라고도 하였다. 서당의 사회적 의미가 증대한 것은 16세기 사림파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하는 것으로, 중종 대 사림파의 향약 보급 운동과도 일련의 연관성을 지닌다. 16세기 서당 설립의 주도 세력은 대부분 당시 향촌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던 명문 사족 출신인 대토지 소유자였다. 예를 들면, 안동의 의성 김씨(義城金氏) 가문, 고평(高坪)의 청주 정씨(淸州鄭氏) 가문, 의성의 함양 박씨(咸陽朴氏) 가문 등이 그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당시 서당 설립의 주도 세력의 신분은 입사(入仕)[벼슬한 뒤에 처음으로 그 벼슬자리에 나감] 이전의 생원·진사들이 주류였고, 설립의 명분은 대체로 반상(班常)의 구별을 비롯한 유학적 질서율을 향촌 사회에 정착시키려고 하는 데서 찾고 있다. 서당의 교육 내용은 고급 성리서(性理書)를 위주로 하거나 과거 응시를 목적으로 하였다.

[김천의 서당]

김천에는 봉암서당(鳳岩書堂)·석곡서당(石谷書堂)·송계서당(松溪書堂)·오봉서당(五峰書堂)·의산서당(義山書堂)·조천서당(藻川書堂)·춘천서당(春川書堂)·황계서당(黃溪書堂)·남곡서당(南谷書堂)·안산서당(按山書堂)·이현서당(二峴書堂) 등이 있었다.

1. 봉암서당

봉암서당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519번지에 있다. 영일 정씨 문중에서 만취당 정이교(鄭以僑)를 추모하고 자제를 교육시키기 위해 1540년(중종 35)에 도장서당(道藏書堂)으로 창건하였다. 김종직(金宗直)이 젊은 시절 이 서당에서 수학하였다고 하나 그는 1492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창건 후 약 백 년 뒤인 인종 중엽에 각곡(角谷) 평전(坪田)으로 옮겼다가 1757년(영조 33)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봉암서당이라고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석곡서당

석곡서당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다. 한강 정구(鄭逑)가 1620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따르던 지례현의 제자들이 회합을 가지고 스승을 기리는 서당을 열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참여한 제자들은 연안 이씨, 벽진 이씨, 남평 문씨, 서산 정씨, 동래 정씨, 의성 김씨, 진양 강씨, 순천 박씨, 안동 김씨, 청송 심씨 등 10개 문중이다. 건립 연대는 1625년경으로 추정되며 1994년과 1998년, 2009년에 보수 공사를 하였다.

3. 송계서당

송계서당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하기]에 있다. 1702년(숙종 28)에 기동(耆洞), 장암(壯岩)의 여러 선비들이 자제 교육을 위해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에 처음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학도들이 모여들어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많았으나 오래되어 돌보는 이가 없어 퇴락하게 되자 1950년대 지금의 자리인 하기(下耆)로 옮겼다. 강당이 있었으나 그것마저 소실되고 현재는 기적비만 남아 있다.

4. 오봉서당

오봉서당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하강리[강성]에 있다. 1701년 안동인 진사 김선(金墠)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01년 김선이 아내의 고향인 하로(賀老)에 이거하면서 백방으로 동지를 모아 5칸짜리 한 동을 지었으나 수학하는 사람이 늘어 1703년에 다시 10칸을 쌍계사(雙溪寺) 승려 목수로 하여금 증축하여 석간정사(石磵精舍)라 하였다. 10칸 가운데 5칸은 승려들의 숙사로 지었다. 1705년에는 초가지붕을 다시 이었다. 이후 지붕을 기와로 바꾸었다. 오봉서당은 직방헌(直方軒), 양정재(養正齋), 석간정사[2동], 주당(廚堂) 등 모두 5동의 큰 규모였다고 하나 현재는 소실되었다.

5. 의산서당

의산서당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 302번지에 있다. 1864년(고종 1)에 의성 김씨 관란재(觀瀾齋) 김여권(金汝權)을 제향하기 위해 경인사(景仁祠)를 건립하면서 함께 지어 의산서당이라고 하였다. 의산서당의성 김씨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건립되었다. ‘명지문(明智門)’이라 편액한 일각문을 들어서면 높은 기단 위에 의산서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서당의 좌측에 사당인 경인사가 별도로 공간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수학한 이도 많았으나 오래도록 방치되다가 1924년에 기와를 다시 이었다.

6. 조천서당

조천서당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162번지에 있다. 조천이란 이름은 서당 앞에 흐르는 시내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지금 걸려 있는 현판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글씨인데 송시열이 이곳에 들렀다가 썼다고 한다. 충주 박씨 안정공(安定公) 박사삼(朴事三)을 기리면서 문중에서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건립하였다. 건립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로 추정된다. 산형 대문(山形大門)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당이 동남향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청 2칸을 어간(御間)으로 하여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7. 춘천서당

춘천서당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파천리 248번지에 있다. 송시열송능상(宋能相)[송시열의 현손]을 향사하기 위해 1756년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되고 현재는 강당만 남아 있다. 입구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기단은 자연석 쌓기를 하였으며, 그 위에 막돌로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두 각주 형태이다. 대청을 어간으로 하여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이다.

8. 황계서당

황계서당은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황계리[황경]에 있는 서당이다. 1905년에 김종규(金鍾圭)와 그의 조카 김문태(金汶泰)가 김녕 김씨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개설하였다. 당시 수학한 사람이 60여 명에 이르렀다. 현재 서당을 관리하는 유사를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9. 남곡서당

남곡서당은 1920년에 경주 정씨 정건변(鄭建變)이 창설하였다. 수학생이 40여 명에 이르렀으나 1945년에 훼철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10. 안산서당

안산서당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소실되었다.

11. 이현서당

이현서당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 상현에 있다. 한말 죽포(竹圃) 안정익(安廷益)이 개설하고 그의 아들인 안효종(安孝鍾)이 뒤를 이어 강학하였다. 이곳을 거친 이만 해도 300여 명이 넘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4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충주 박씨 안정공(安正公) 박사삼(朴事三)을 기리면서 ->충주 박씨 안정공(安定公) 박사삼(朴事三)을 기리면서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