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효자 홍균표 씨 부부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A030201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부끄럼 많은 효자 부부]

“아이고 안 할랍니다. 부모 봉양하는 것이야 당연한 인간 도리인데 무신 자랑이라고.”

동부리 효자로 이름난 개령면 동부리 140-1번지 홍균표[1944년생] 씨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마을 이장 김용이[1962년생] 씨를 앞세워 무슨 군사 작전이라도 펼치듯 자택을 급습하여 소여물을 주고 축사에서 나서는 부부와 딱 마주쳤다. 도망치는 부부를 뒤쫓아 오랜 설득 끝에 사진만은 절대로 내지 않는다는 다짐을 하고서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동생들 뒷바라지하려고 시골에 남았지요]

감문면 대양리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 홍균표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남양홍씨 일가들이 터를 잡고 있던 개령면 동부리 감천 변으로 이사를 했다. 그 후 개령초등학교김천중학교, 상주농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로한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비를 대주어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잡아 놓았던 직장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24세 되는 해 선산에서 시집을 왔다는 부인 권억란[1947년생] 씨는, 결혼하면 바로 도회지로 나가서 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남편이 결혼 전에 그렇게 말을 했기에,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 보따리도 풀지 않고 몇 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했으니까 시부모님들은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기에는 아깝다고 자꾸 나가 살라고 하는데도 저 양반이 동생들 공부시켜야 한다매[한다며] 고집을 부리더라고. 그때는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야속했지만 이것도 내 운명이려니 싶어서 그냥 살았지.”

권억란 씨는 동부리에서 양파·시금치·오이·수박·참외 등 갖은 채소 농사를 지어 새벽에 뽑아 김천장에 내다팔고, 돼지와 소 등 가축을 사육하며 어려운 시골 살림을 일구는 재미로 살았다고 한다.

[개령 효자로 귀감이 되고]

“우리 형제들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한 걸 생각하면…….” 홍균표 씨는 부모님 이야기를 해 달라는 이야기에 말을 잇지 못하고 거친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농사가 적어 평생을 쌀장사를 하며 5남매를 키우던 부모님 중 어머니가 1985년 먼저 세상을 떠나 아버지 홍순복[87세] 씨만을 홀로 모셔 왔는데, 5년 전 치매가 찾아온 이후 지금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똑똑했던 분이 저렇게 되시니 기가 맥혀요[막혀요]. 수시로 집을 나가시는데 동네사람들이 길에 헤매는 걸 보고 모셔 오기도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지요.”

며느리 권억란 씨는 빈틈없고 사리 분별이 밝았던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동부리 주민들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집 나가기를 반복하는 병든 부모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봉양하는 이들 내외의 효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특히 1987년 감천의 범람으로 집이 물에 잠겼을 때, 방안에 갇힌 아버지를 업고 옥상으로 대피한 후 구조 헬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진 홍균표 씨의 사연이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지면서, 인근 마을의 주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홍균표 씨 부부는 효행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다]

홍균표 씨의 집은 감천 변에 자리한 관계로 여러 차례 수해를 입었는데, 1987년 한 해 동안에는 두 차례의 수해로 키우던 돼지를 모두 잃었고, 1992년과 2002년에도 집이 잠겨 큰 피해를 보았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 것을 우짜지는[어떻게 하지는] 못하지만 연신[수시로] 물이 넘어들면 당국에서 적절한 대책을 세워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단 말이지. 집이 물에 잠기니까 겁이 나서 2002년에는 참말[정말로] 이사를 갈까도 싶었지만, 부모님이 우리들을 키운 자린데 우째[어떻게] 쉽게 떠나겠어요.”

홍균표 씨 부부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소 사육을 시작해 지금은 한우 25마리를 키우는 어엿한 부농으로 일어섰다. 자신도 나이 70을 바라보는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면서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며 소리 없이 효를 실천하는 홍균표 씨 부부의 갸륵한 마음씨가 집 앞을 흐르는 감천 냇물만큼이나 맑고도 깊어 보였다.

[정보제공]

  • •  홍균표(남, 1943년생, 개령면 동부리 주민)
  • •  권억란(여, 1946년생, 개령면 동부리 주민)
  • •  김용이(남, 1963년생, 개령면 동부1리 주민, 동부1리 이장, 개령면 농업경연인협회 회장)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