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B03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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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다희 |
[마을회관 앞 장미집]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회관 맞은편에 있는 장미집은 원터마을 사람들이 권복희[1925년생] 씨 댁의 위치를 설명해 줄 때 하는 말이다.
마을에서는 가장 신식으로 지어진 집이기도 하고, 담벼락에 잘 정돈된 붉은 장미로 보아 타지 사람이 이곳에 새로 집을 지어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미집 앞 텃밭에서 비녀를 꽂은 할머니가 흙 묻은 손을 털어 내고 일어선다. 같은 연배의 할머니들은 다들 허리가 굽어 다니시는데 한참을 텃밭을 일구시고 꼿꼿이 서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놀랍다.
“똘비야, 이리 온.”
할머니가 혼자 살기에 적적하다고 손녀가 데려다 놓은 강아지 이름이다. 할머니의 부름에 꼬리를 치며 달려오는 ‘똘비’는 시골에서 사는 개치고는 너무나도 세련된 애완견의 모습이다. 아직까지도 비녀를 꽂은 할머니와 애완견 ‘똘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친근하다.
[아픈 피란의 기억]
“옛날 얘기가 할 게 뭐가 있겠어. 그냥 그렇게 살았지.”
한사코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들은 것은 그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고 나서였다. ‘도개댁’으로 불리는 할머니는 선산 도개면에서 시집을 왔다. 안동권씨로 17세 때 시집을 와서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시집 온 시절이 시절인지라 남편이 군대에 끌려간 3년간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산 세월은 고작 4년 남짓. 또다시 전쟁이 터지고 남편이 전쟁터에 끌려 나가 시어머니와 큰동서, 막내동서와 네 살 딸아이를 데리고 선산과 군위로 피란을 갔다.
피란 가기 전 남편이 마음에 걸려 문 앞에 친정으로 피란을 간다는 쪽지를 남겨 놓고 떠났다.
“경찰이 왔다 갔거든. 여 나가고는 못 봤고. 그런데 그렇게 피란 가면 그래 찾아오라고 그랬지.
찾아 그래 오라고 써 놓고 가도 안 와. 그때 살았는가 안 살았는가.”
6월에 피란을 가서 한 달 만에 돌아왔을 때는 집마저 폭격을 맞아 집터밖에 없었다.
여자들만 가득했던 집에서 권복희 씨는 시어머니를 어머니보다 더 의지한 채 살았다고 한다.
“손녀가 찾아와서 물어. 할머니 옛날 전쟁 났을 때 얘기해 달라고. 그래도 얘기를 안 해 줘. 그 얘기 꺼내서 뭐할라고. 마음만 아프지.”
할머니의 가슴 아픈 얘기를 꺼냈던 게 못내 미안해진 필자는 꼬리를 치는 똘비를 겸연쩍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절의 집]
권복희 씨 댁 대문 앞에는 ‘국가 유공자의 집’, ‘정절의 집’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현대판 열녀문의 상징이다.
“몰라. 이거 언제 달아 놨는지.”
권복희 씨는 문패를 언제 달아 놨는지도 모르겠다며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여자 혼자 몸으로 딸을 키우기도 버거웠을 텐데 불천위, 향사, 묘사 등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빠지는 데 없이 참여해 도왔다고 한다.
불천위 제사 때 종택에 남아 떡을 썰고 있던 것도 그녀였다.
그렇게 권복희 씨는 홀로 남편의 고향을 내 고향같이 여기며 그 터전을 지키고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