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C030102 |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재민 |
[우리는 해인방위대]
지구를 지키는 지구방위대 ‘후레쉬맨’이 있듯이 해인리에도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앞장서고 마을을 수호하는 ‘해인방위대’가 있다. 해인방위대는 해인리 노인회장 이종출[1936년생] 씨와 총무 김광열[1946년생] 씨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해인방위대의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인 살펴보기로 하자.
[앞으로가 기대되는 노인회장님]
해인방위대의 1호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종출 씨는 2010년 현재 노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종출 씨의 본관은 벽진으로,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되던 해인 1945년 광복을 맞아 해인리로 들어오면서 해인리와 연을 맺게 되었다.
“친척이 많이 없는데, 바로 우리 위에 큰집이, 그러니까 우리 오촌이지예[오촌이죠]. 오촌이 여기서 잘살았어요. 그래가 그 밑에 머슴살이라도 할라고 이 마실에[마을에] 들어오게 됐지요.”
한국에 친척이라고는 해인리에 있는 오촌형님밖에 없었기에 이종출 씨는 광복 후에 자연스레 해인리로 들어와 오촌형님 밑에서 일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논을 사서 일구며 오촌형님 밑에서 독립을 하고 마을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우리말을 잘 못했는데, 그게 참 힘들었어요. 알겠다고 대답만 하고, 그렇게 몇 년을 살았죠. 그래도 우리 마실에 사람들이 원채[많이] 좋아가, 생활 잘했어요.”
이종출 씨에게, 해인리는 어떤 곳이냐고 물어 보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이젠 내 고향이여. 하하하.”
2005년 1대[2005~2009년] 노인회 총무를 지냈으며, 2009년부터는 노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종출 씨가 마을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지 내심 기대해 본다.
[젊은 패기를 가진 노인회 총무]
해인방위대 2호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김광열 씨의 본관은 김해다. 1946년 해인리에서 태어나 한평생 해인리와 함께한 마을 토박이다.
김광열 씨는 인근의 대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7남매 중 장남이란 책임감 때문에 바로 농사를 지으며 동생들을 부양하기 시작하였다.
“위에 누나가 둘 있어. 그리고 다음이 나야. 내가 장남인 택이지. 그래가 초등학교 나와가 바로 농사일 시작했어.”
열입곱 살 되던 해, 김광열 씨는 청년회에 가입하고 청년회원으로서 약 10년간 활동하였다. 당시 청년회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마을 청년들이 활동했는데, 주로 마을에 노동력이 필요한 일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가서 마을 환경 정리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도시화 바람으로 인해 마을 청년들 대다수가 해인리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청년회도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 또래들이 다 나갔잖아. 대구로 서울로 다 갔어. 그니까 마을에 내 또래가 없는 기야. 그래가꼬[그러한 이유로] 청년회도 없어졌지.”
해인리에서 호두와 오미자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 김광열 씨는 2009년 이종출 씨가 신임 노인회장으로 선출될 때 신임 총무로 선출되었다.
2009년 당시 김광열 씨는 우리 나이로 64세여서 노인회 회원이 될 자격이 없었으나, 마을 어른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총무를 맡아 지금까지 노인회 살림을 맡고 있다.
“봐, 우리 노인회가 65세 이상인데, 작년[2009년]에 내가 육십넷이었다고. 그런데도 어른들 시키니까 별 수 있나. 그냥 총무 맡아 부렸지 뭐. 허허.”
해인방위대의 활약이 중요한 이유는, 해인리 주민들 중 대부분이 노인회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이 더욱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들의 값진 땀방울이 있어야 한다. 해인방위대를 이끌어 갈 이종출 씨와 김광열 씨의 멋진 활동을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