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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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頃左翼事件 |
영어의미역 | The Leftist Affair of Mangye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승대 |
성격 | 좌우익 대립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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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950년 |
종결연도/일시 | 1953년 |
발생(시작)장소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
[정의]
1950년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우익 인사 등이 인민군과 지역 좌익에 의해 학살된 사건.
[역사적 배경]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도 좌우익의 대립이 격렬했고, 일제강점기 이후 탄압을 받았던 지역 좌익 및 지역 주민들은 북한군이 들어오자 우익 인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경과]
1950년 9월 27일 당시 김제군 만경면의 지주 정판석 일가 6명이 사위가 경찰이라는 이유로 만경면 분주소 내 우물과 방공호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고, 만경교회 김종환 목사[당시 45세] 등 교인 15명도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1950년 7월 19일 밤 10시경 인민군들이 만경에 쳐들어오자 당시 만경에 있던 2개 교회 중 하나였던 대동교회는 인민군에 징발되어 민주선전실이 되었다. 하지만 만경교회는 초대 장로인 곽영욱의 영향력으로 인민군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4일 만경교회의 여집사 윤숙병·최남인·이여순 등이 끌려가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혀 심한 고문을 받았다.
또 만경교회에서 반공혁명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던 청년들이 체포되어 끌려간 뒤 행방이 묘연했고, 서울 수복 전날인 9월 27일 밤에 김종환 목사와 만경 교인 14명은 집단 학살당했다. 인민군들은 김종환 목사와 교인들을 우물 속에 빠뜨려 학살하였다. 김종한 목사는 김제군 백산면 신기리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다가 1950년 같은 군의 만경교회에 부임하였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에 형사였던 임정규 등 적어도 63명이 1950년 9월 27일 김제내무서 앞 공터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매장되어 숨졌으며, 1950년 9월 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만경면 화포리 부유층 인사들과 그 가족 등 최소 65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소토리 공동묘지와 화포리 창자마을에서 평소 지주들에게 원한을 갖고 있던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되었다.
[결과]
2008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전쟁 중에 만경면 분주소에서 희생된 인원은 최소 53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좌우익 대립의 희생양이 되어 학살당하는 참변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