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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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萬頃里萬頃邑城址 |
영어의미역 | Mangyeong-eup Fortress Site in Mangyeong-ri |
이칭/별칭 | 만경리 만경읍성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산71-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유호석 |
성격 | 읍성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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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삼국시대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산71-1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삼국시대 읍성 터.
[변천]
만경읍 만경리에 있는 후록산(後麓山)은 백제시대 두내산(豆內山) 또는 두릉(杜陵)이라 칭했다. 이런 이유로 후록산을 두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만경편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는 조선 전기 어느 시기인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둘레가 겨우 1백 보에 불과한 작은 토성(土城)이 있었으나, 퇴폐된 채 방치되어 성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이 토성과는 별도로 읍성이 축조되어 읍을 수호하는 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 만경편 성곽 조에 “읍성은 돌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2,820척, 높이 12척, 내부는 6개의 샘이 있고 성 동쪽으로 토성의 옛터가 있다[邑城石築 周二千八百二十尺 高十二尺 內有六泉 城東有土城古基].”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뒤 편찬된 읍지의 기록은 이와 조금 다른데, 즉 1790년에 편찬된 『만경현읍지(萬頃縣邑誌)』에는 “읍성은 돌로 축조되었으며, 둘레는 2,820척, 높이 20척, 성첩은 2,410개이고, 옹성문은 동문·서문·남문에 있다[邑城石築 周二千八百二十尺 高二十尺 女堞二千四百十 甕城門東門西門南門].”라고 하였다. 또한 1870년대 편찬된 읍지에는 “성첩은 삼리에 걸쳐 둘러 있고, 높이 5척, 옹성은 네 곳, 성문은 세 곳이다[城堞周廻三里 高五尺 甕城四處 城門三處].”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초에 허물어져서 이제는 그 원형조차 찾을 길이 없다.
[위치]
만경리 만경읍성 터는 후록산에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비옥한 농토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호반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또한 동쪽으로는 멀리 모악산(母岳山) 기슭에서 잔잔히 뻗어 내려온 평원지대가 두산(杜山)과 연결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4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김제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의 일환으로 만경읍성 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물이 1985년 편찬된 『김제지방문화재지표조사보고서』이다. 2007년에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문화유적분포지도』-김제시 편을 작성하면서 이곳에 대해 조사하였다.
[의의와 평가]
만경읍성의 성곽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것은 만경읍이 서해에서 육지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