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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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之龍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Ma Jiryong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111-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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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95년(숙종 21) |
정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111-5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마지룡의 정려.
[개설]
마지룡(馬之龍)의 본관은 장흥, 자는 비섭이다. 27세 정묘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어영장이 되었다. 병자호란 후 효종을 모시고 심양에 있을 때 청나라의 협박으로 300여 군졸을 거느리고 금주 싸움의 선봉으로 출전하여 명나라와 싸우는 청나라를 도왔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준 명나라 은혜를 생각하고 부하에게 화살은 화살촉을 빼고 총탄은 철환 없이 화약만 넣어 쏘도록 명령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이 청나라에 발각되어 1642년(인조 20) 2월 16일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마지룡의 행동은 정신적 지조에서 나온 것으로서, 『김제향교지』 충훈 편을 보면 마지룡은 장흥인으로 병자호란 시 순절하여 충신으로 정려를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마지룡의 시신이 우리나라로 운구되어 올 때 ‘대명충신조선의사마공지추(大明忠臣朝鮮義士馬公之樞)’라고 명정(銘旌)에 썼다. 이후 마지룡의 둘째 아들이 나라에 아뢰어, 왕으로부터 의를 지키고 죽음으로써 다한 뜻을 높이 찬양받아 후세에 본보기가 되도록 왕명으로 마지룡의 묘소 앞에 정려를 세우게 하였다.
[위치]
죽산면사무소에서 성덕으로 가는 길을 따라 약 2㎞ 가면 오른쪽에 소나무 밭이 있고, 솔밭에 죽동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로 약 450m 가면 죽동교회가 나오는데, 충신 마지룡 정려는 교회 뒤 밭 가운데 있다.
[변천]
충신 마지룡 정려는 1695년(숙종 21) 건립되었다. 석정려는 1920년 10월 중건한 것이다.
[형태]
충신 마지룡 정려는 석정려각으로 정면 1칸 규모이다. 돌기둥을 2개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갓석을 얹었고, 그 밑에 돌로 된 현판이 걸려 있다. 편액은 ‘충신어영장마지룡지려(忠臣御營將馬之龍之閭)’라고 예서의 필획으로 4줄에 걸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