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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669
영어음역 Mulre
영어의미역 Spinning Wheel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집필자 박진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방적 기구
재질 나무
용도 방적용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실을 뽑을 때 쓰는 기구.

[개설]

목화의 솜이나 누에고치의 실을 잣는 간단한 수공업의 방적 연장으로 물레바퀴와 가락 사이에 솜을 걸고 물레를 돌리면 가락이 빠른 속도로 돌면서 실을 뽑는다. 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감는 가락, 물레의 몸과 가락을 걸쳐 감아 물레가 돌아감에 따라 가락을 돌게 하는 물레줄, 이 줄에서 힘을 받아 가락을 돌리는 물레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씨아에서 나온 솜으로 고치를 만든 다음, 이것을 풀어 실을 잣는 데 사용한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가락이 빠르게 회전한다.

[연원 및 변천]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물레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5세기~기원후 6세기부터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레가 발명된 곳이 인도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중세에 근동(近東)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사람들은 방차를 써서 삼과 같은 식물 섬유를 뽑아 경사가 두드러진 평직물을 짰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추기는 삼국시대에 수직기로는 가장 발달한 능직기로 발전하여, 4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능라겸견을 수십 척의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물레는 하루에 4개의 가락에 실을 들일 수 있다고 한다. 솜으로 실을 잣는 재래식 기구인 물레라는 말은 중국에서 목화씨를 전래한 문익점(文益漸)의 손자 문래(文萊)가 목화씨에서 실을 잣는 틀을 발명하였다고 하여 문래라 부른 것이 변이되어 물레가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문래가 목화에서 씨를 뽑는 기계인 씨아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실을 잣는 기구를 ‘물레’라고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초 유럽에 처음 소개된 색슨 물레는 실을 계속 감을 수 있는 실패와 함께 사용했으며 수직으로 고정시킨 막대에 섬유 뭉치를 감았다. 또한 발판을 밟아서 움직였기 때문에 양손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에서 개량 직기가 등장하면서 실의 수요가 많아져 기계 방적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기존 물레를 대신하는 동력·기계를 이용한 여러 가지 발명품이 등장해 산업혁명의 한 부분이 되었다.

[형태]

하나는 나무를 깎아 만든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매어 보통 6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를 붙인 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개의 살을 붙여 만든 두 개의 바퀴를 나란히 놓고 바퀴 테 사이사이를 대나무 쪽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몸을 이룬 형태이다. 이러한 물레는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썼다. 물레의 바퀴는 양쪽에 기둥이 있어 떠받치며 기둥 받침대에 연결된 나무 끝에 괴머리가 달린다.

괴머리에는 가락이 실려서 바퀴가 돌아갈 때 고치에서 실이 드려진다. 가락은 하나를 싣는 것이 원칙이나 실을 여러 겹으로 뽑을 때는 둘이나 셋을 쓴다. 꼭지마리·동줄·굴똥·물레줄·물레돌·고동·가락·가락옷·가락토리·물레바퀴·가리장나무·괴머리·괴머리기둥·설주 등의 부분 명칭이 있는데, 대개 18개의 부속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회전축을 이용하는 물레는 용도에 따라 방차, 도차, 선륜차 등으로 부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김제 지역의 농가에서는 겨울철 한가한 때 물레를 이용해 길쌈을 했다. 물레로 실을 뽑는 것을 ‘잣는다’고 한다. 목화는 음력 3월에 씨를 뿌려 음력 7월에 피기 시작해 8월 중순에 첫물을 딴 뒤 초겨울까지 계속 수확한다. 삼베는 3월에 씨를 뿌려 7~8월에 거둔 뒤 겨우내 베를 나린 뒤 봄부터 짜기 시작한다.

명주의 경우에는 4~5월 중 한 달 동안 잠업을 해서 짠다. 옛날에는 여성들이 베를 집에서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삼, 모시, 목화, 누에 등에서 실을 뽑아 삼베, 모시, 무명, 명주 등의 옷감을 짰다. 이렇게 옷감을 짜는 일을 길쌈이라 한다. 아녀자들의 길쌈은 남정네들의 농사일과 함께 옛날부터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신라에서는 길쌈을 장려하기 위해 해마다 음력 7월 15일부터 서울 안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길쌈내기’를 했다. 한 달 만인 8월 한가위에 승부를 가리고 한 판을 놀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우리 조상들은 길쌈 보급과 기술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물레질은 방적 공정의 80%를 차지하는 일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물레노래를 부르면서 하곤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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