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C01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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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
시대 | 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배해수 |
내촌마을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살아온 함양박씨 집안에는 말뫼동이라고도 불리는 말뫼동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나간 박씨 가문 선조 한 분이 전투에 나가 장렬하게 전사한 후 그의 옷자락을 말이 물고 돌아와서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이 그 말의 충성심을 기려서 말과 유품을 함께 안장한 곳이라 하여 말 묘, 또는 말뫼동, 말뫼동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다 의미가 있어]
그러나 어릴 때부터 웃어른들에게서 마을 지명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수근[1943년생] 씨는 말뫼동산이란 지명에 대해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박씨 집안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머시냐 풍수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머는 무슨 무슨 터라고 허잖여. 여그는 소 터, 비얌 터, 퇴깽이 터…… 거그 말뫼동은 고런 식으로 보먼 말 터라고 봐야 혀. 산 자체가 말허고 관계가 있다는 것이지…… 잘 몰라도 내 생각으로는 말뫼등이 아니고 말미등이 아닌가 싶어. 말마 짜에 꼬리 미, 쉽게 말하자먼 말꼬랑지 형상이다 그거여. 고지 듣기지 않을랑가 모릉게 더 들어 볼랑가.
자! 여그 내촌 근처는 널찍한 벌판인디 벌판 우그다 집을 지먼은 겨울에는 어찌 살겄는가. 바람을 막아 주는 디가 없이, 그리서 동네를 이렇게 아녹하게 감싸 주는 산들이 있어야 헌단 말여. 쭉 둘러 보먼 저그 산들이 뵈잖은가? 다 이름덜이 있어. 소를 매어 둔 자리라서 소매동산, 삿갓맹키로 생겨서 삿갓재, 매를 키웠다고 히서 매봉재, 거 양산날은 모르겄고. 말뫼동, 홍지뫼, 저그 웃 옆에 굴잔등, 그 옆으로 청룡날, 글고 뜸안, 뜸건너, 보기에는 쪼깐허게 보여도 말여 다 이유허고 사연들이 있다 그 말이여. 여그는 다 산세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거여. 그러니 말뫼동도 그렇게 봐야지.”
마을 지명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예전부터 마을 어른들에게 들어 온 이야기라고 했다. 이수근 씨는 60대 후반인데, 자신은 이 동네에서는 노인 축에도 못 낀다면서 웃는다.
“나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윗 양반덜 놀러 가는디도 잘 안 따라가. 뭐 나이 먹고 어깨를 못 쓰다 봉게 고향에 있게 됐는디. 살아 본게 그리도 고향이 젤여.”
그는 젊은 시절에는 비록 객지 생활을 해서 고향에서 산 날들이 많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고 몸이 아파 고향에 돌아와 보니 그래도 고향이 제일 편하다고 하였다.
마을 지명들을 잊지 않고 전해 주는 그의 말 속에 고향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 있었다.
“뭐시냐, 아리랑마을이 생기먼 나도 거그서 아무 일이라도 히보고 싶은디.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겄고 거그서 나를 써 줄랑가도 모르겄어. 허허허.”
아리랑 문학마을이 조성되면 마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수근 씨가 외지인들에게 내촌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사투리로 들려주는 그의 모습이 고향에 온 듯 정겨웠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