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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959
한자 柳永善
영어음역 Yu Yeongseon
이칭/별칭 희경(禧卿),현곡(玄谷)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
성별
생년 1893년연표보기
몰년 1961년연표보기
본관 고흥

[정의]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희경(禧卿), 호는 현곡(玄谷)이다. 189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리에서 태어났다. 석탄(石灘) 유운(柳澐)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수당(睡堂) 유지성(柳志聖)이다. 아버지는 유기춘(柳基春)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병현(李秉賢)의 딸이다. 큰아들은 유호석이고, 작은아들은 유태석이다.

[활동사항]

유영선(柳永善)은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격몽요결(擊蒙要訣)』과 『소학(小學)』을 배웠다. 1904년 12세 때 할아버지를 따라서 고부 영주산 속의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찾아가 문하에 들었다. 1905년 전우가 부안 목중리로 옮겨 갈 때도 함께 따라갔다. 그 해 4월 전우를 초청하여 관례를 치렀는데, 이때 전우가 자를 현곡이라 지어 주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전우를 따라 서해(西海) 고군산 외딴섬 왕등도(旺嶝島)·계화도(繼華島) 등지에서 20여 년간 갖은 고초를 극복하면서 유학에 전념하였다. 1922년 전우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고 귀향했다. 1924년 백운산 아래 외화동에 현곡정사(玄谷精舍)를 건립하고, 도학을 보전하기 위해 후진 교육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했다.

1930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가례대로 장사지내고 사당을 세워 지성으로 모셨다. 1958년 이병은(李炳殷)·김훈석 등과 함께 전우의 진영을 용암사(龍巖祠)에 봉안하고 상읍례(相揖禮)를 행하였다. 1961년 선친의 묘 아래 재실을 짓고 경수재(敬修齋)라 이름 하였다. 이 해 4월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9세였다. 문인으로 홍종호, 임종수(林鍾秀), 신사범 등이 있다.

[저술 및 작품]

1924년 아버지의 명에 따라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연보를 작성하였다. 1936년 44세 때 『간재연보(艮齋年譜)』를 4권으로 출간했다. 권순명과 함께 20여 일 동안 금강산을 관람하며 수십 수의 시를 지었다. 1943년에는 간재의 묘갈명을 완성했고, 『석농유고(石農遺稿)』를 교정하였다. 1960년 사고(私稿) 8책을 정서했다. 편저로 『담화연원록(潭華淵源錄)』·『구산풍아(臼山風雅)』·『오륜시편(五倫詩編)』·『규범요감(閨範要鑑)』 등이 있으며, 저서로 『현곡집(玄谷集)』 32권 16책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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