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065
한자 十信寺址石碑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용봉동 1004-4]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이전 시기/일시 1990년 - 십신사지석비 십신사지석불과 함께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앞마당으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11월 1일연표보기 - 십신사지석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지정
현 소재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용봉동 1004-4]지도보기
성격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 너비, 두께) 지대석- 5.15m[높이]|2.98m[길이]|1.68m[너비]|귀부- 2.73m[길이]|1.32m[너비]|비신- 3.96m[길이]|0.98m[너비]|0.5m[두께]|옥개석- 0.35m[높이]
문화재 지정 번호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석비.

[개설]

십신사(十信寺)는 고려 문종 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광산현(光山縣) 불우조(佛宇條)에 '십신사 재현북오리 평지유범자비(十信寺在縣北五里平地有梵字碑)'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십신사 터는 일제강점기 때에 잠업 시험장으로 이용되다가 이후 광주공립농업학교[지금의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가 자리 잡게 되었다. 십신사지석비(十信寺址石碑)광주공립농업학교에 있다가 1977년 광주공립농업학교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으로 이전하자, 1990년 십신사지석불(十信寺址石佛)과 함께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앞마당으로 옮겨졌다.

[건립 경위]

움츠러들어 왜소해진 거북의 머리 모양이나 간략화된 등껍질 문양 등을 통해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비신에 새겨진 비문에서 '정사(丁巳)'의 간지를 통해 조선 전기 정사년인 1437년(세종 19)과 1497년(연산군 3)을 건립 연대로 추정할 수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앞마당에 있다.

[형태]

십신사지석비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가 5.15m, 길이 2.98m, 너비 1.68m의 지대석 위에 길이 2.73m, 너비 1.32m의 귀부를 놓고, 그 위에 길이 3.96m, 너비 0.98m, 두께 0.5m의 비신을 결구(結構)한 다음, 높이 0.35m인 옥개석(屋蓋石)을 올려놓았다. 옥개석의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비신과 귀부를 모두 갖추었다.

비신의 상부에는 길이 83㎝, 폭 68㎝의 사각형 구획 안에 범자(梵字) '옴' 자를 새겼는데, 이 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십신사에 범자비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범자 밑에는 '대불정존승다라니당(大佛頂尊勝陀羅尼幢)'라고 음각되어 있어, 「불정존승다라니경(佛頂尊勝陀羅尼經)」을 새긴 경당(經幢)[석당(石幢)]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범자를 새긴 경당은 황해도 해주시와 평안북도 용천군의 불정사(佛頂寺)에 다라니석당(陀羅尼石幢)이 전하는데,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6면 석당이다. 1988년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월광사지(月光寺址)에서 발견된 비석은 판석형의 자연석 위에 새겨 놓은 것으로 모두 범자로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십신사지석비는 상단의 '옴'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자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석당과 달리 석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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