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28
한자 望月洞紛土-堂山祭
이칭/별칭 망월동 분토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90년대 초 -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 재개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숫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 가운데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암당산] -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 북쪽 논두렁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모시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분토마을 사람들이 지냈던 마을 제의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모셨다. 미신이라는 이유로 8.15 해방 이후 중단되었으나, 1990년대 초 마을의 부녀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연원 및 변천]

자기를 만들 수 있는 분토가 많이 난다는 뜻에서 분토마을로 불린다. 현재의 마을은 임진왜란을 피해서 들어온 홍주석씨를 중심으로 성촌된 것으로 보인다. 일찍부터 개발 제한 구역과 공원 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좋은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들이 많다. 분토 당산제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해방 이후에 단절되었다. 이후 마을이 점점 쇠락해지자 1990년대 초부터 몇 명의 부녀자들이 당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1987년 조사에 의하면 분토마을의 당산은 두 곳이었다. 할아버지당산[숫당산]은 윗당산으로 마을 가운데 있었던 느티나무이다. 할머니당산[암당산]으로 여겨지는 아랫당산은 수령 500년 정도의 느티나무로 마을 북쪽 논두렁에 있었다. 약 6년 후인 1993년 조사에 의하면, 할머니당산은 고사하여 그 터만 남아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당산은 현재 광주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수령 300여 년으로 옆에 마을 정자가 있다.

[절차]

8.15 해방 이후 중단되기 이전의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를 살펴보면, 본래 정월 열나흗날이 당산 제일(祭日)이나 새해부터 당산 제일 사이에 마을에서 상이 나면 음력 2월 초하루로 연기하여 지냈다. 제관(祭官)은 마을의 연장자 중에서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이 맞는 사람으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선정하고, 축관은 마을 유지가 맡았다. 화주는 깨끗하고 상을 당하거나 어린이가 없는 부부를 선정하였는데, 화주를 맡아 정성을 다해 당산제를 모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화주로 선정되면 매일 목욕하고, 대소변 후에는 반드시 냇가에서 목욕을 하는 등 금기가 엄격하여 음식을 일부러 적게 먹기도 하였다.

정월 12일에 마을 입구와 당산에 금줄을 쳐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고, 화주 부부는 양동시장에 가서 제물(祭物)을 준비한다. 제비(祭費)는 마을에서 인구전으로 걷은 돈을 사용하였으며, 제물은 화주 부부만 참여하여 정갈하게 준비한다. 당산 제일인 열나흗날이 되면 마을을 깨끗이 청소하고, 오후에는 농악대가 마을을 돌며 굿을 치고 당산에 촛불을 밝혔다.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에서 할머니당산 순으로 지냈으며, 제차(祭次)는 '진설→분향→강신→독축→소지→헌식→음복' 순으로 모셨다.

1990년대 초 소수의 부녀자들에 의해 복원된 당산제 또한 정월 열나흗날에 모셔졌다. 역시 정월 12일에 금줄과 금토를 치는 것으로 당산제 준비를 시작하며, 제를 모시는 절차 또한 중단 전과 동일하다. 다만 당산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 몇몇 사람들만 돈을 걷어 제비를 마련하는 등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일반적인 당산제의 모습과는 차이를 보였다.

[부대 행사]

당산제 중단 전의 경우, 당산제 이튿날 마을 사람들은 화주집에 모여 당산제 결과를 공유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거출한 짚으로 줄을 꼬아 웃뜸과 아랫뜸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고, 마당밟이를 하였다.

[현황]

망월동 분토마을 당산제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8.15 해방 이후 중단되었다가, 1990년대 초 소수의 부녀자들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현재는 제를 거의 지내지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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