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서석산규봉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53
한자 留題瑞石山圭峯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055년 - 의천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101년 - 의천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배경 지역 규봉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영평리 897]
성격 한시
작가 의천

[정의]

고려시대 국사인 의천이 무등산 규봉암에 머물렀던 내용을 쓴 한시.

[개설]

「유제서석산규봉사(留題瑞石山圭峯寺)」를 지은 의천(義天)[1055~1101]의 속명은 왕후(王煦), 호는 우세(祐世), 법명은 의천이다. 1055년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출가를 자원하고 1065년 불일사(佛日寺)에서 구족계(具足戒)[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았다. 1085년 중국 송나라로 유학을 가서 유성법사(有誠法師) 등과 교유하였고, 인도 승려 천길상(天吉祥)을 만나 인도의 사정과 학문을 배웠다. 1086년 귀국한 뒤 흥왕사(興王寺)의 주지가 되어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설치하고, 『교장』의 간행 목록으로서 삼장(三藏)의 정본 외에 그 주석서인 장소(章疏)만을 수집하여 목록을 작성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3권을 편집하였다. 1097년 국청사(國淸寺)의 제1대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강의하였고, 1099년 천태종의 승려를 선발하는 제1회 승선(僧選)을 행하고, 2년 후 국가에서 천태종 대선(大選)을 행하였다. 저서로는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 『신집원종문류(新集圓宗文類)』 22권, 『석원사림(釋苑詞林)』 250권,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23권과 『대각국사외집(大覺國師外集)』 13권, 『간정성유식론단과(刊定成唯識論單科)』 3권, 『천태사교의주(天台四敎儀註)』 3권 등이 있는데, 지금은 『신편제종교장총록』 3권과 『대각국사문집』, 『대각국사외집』의 낙장본, 『원종문류』, 『석원사림』 일부, 『간정성유식론단과』의 서문만이 전하고 있다. 「유제서석산규봉사」는 의천의 시문을 모은 『대각국사문집』 제17권에 수록되어 있다.

「유제서석산규봉사」의 배경이 되는 규봉사무등산에 있는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는 설, 그리고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였다는 설 등이 있는데, 주변 유물로 보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진각국사 혜심(慧諶)과 나옹화상 혜근(惠勤)도 규봉사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구성]

「유제서석산규봉사」는 1구에 5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오언율시이다.

[내용]

유제서석산규봉사(留題瑞石山圭峯寺)[서석산 규봉사에 시를 남기다]

고성차유명(古聖此遺名)[옛 성인 여기에 이름을 남겼는데]/ 등림산해평(登臨山海平)[올라와 보니 산은 바다처럼 평평하네]/ 유천청가애(幽泉淸可愛)[깊은 샘물 맑아서 사랑스럽고]/ 서석화난성(瑞石畵難成)[상서로운 바위는 그리기 어렵네]/ 미신인간세(未信人間世)[인간 세상은 믿을 수 없으니]/ 유첨물외정(惟添物外情)[오직 속세 밖에서 정을 더하네]/ 하시입공업(何時立功業)[언제나 공업을 세워서]/ 심은노여생(深隱老餘生)[남은 노년을 깊이 은거하려나]

[특징]

의천이 지은 「유제서석산규봉사」는 현재까지 알려진 무등산에 관한 작품 중 그 내용이 전해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고려 후기 문신인 김극기(金克己)「유제서석산규봉사」를 차운하여 한시 2수를 지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유제서석산규봉사」는 대각국사 의천의 시 세계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고려 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 무등산 규봉사를 기록한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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