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석산」[정운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881
한자 遊瑞石山-丁運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66년 - 정운희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5년 - 정운희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
작가 정운희|

[정의]

조선시대 문인인 정운희무등산을 오르고 읊은 한시.

[개설]

「유서석산(遊瑞石山)」을 지은 정운희(丁運熙)[1566~1635]의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지회(之會), 호는 고주(孤舟)이다. 1566년에 아버지 정호(丁浩)와 어머니 고성채씨(固城蔡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1589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李舜臣)의 휘하에서 활동하면서 시인 백진남(白振南)[1564~1618]과 함께 군량미 지원 및 의병 모집에 힘쓰는 한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을 도와 싸우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홍서봉(洪瑞鳳)의 천거로 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강릉참봉의 임기가 끝나자 귀향하여 학문에 힘쓰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경사(經史) 연구에 힘썼고 고문(古文)과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가례』 등 여러 경적(經籍)을 간행하기 위한 책판 조조(彫造)의 공적이 많았다. 저서로 『고주집(孤舟集)』이 있다.

[구성]

「유서석산」은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로, 정운희의 문집 『고주집』 2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 아래 "일명무등산 재광주(一名無等山 在光州)[일명 무등산으로 광주에 있다]"라는 소주(小註)가 붙어 있다. 서석산무등산의 별칭이다.

[내용]

유서석산(遊瑞石山)[서석산을 유람하며]

무등산여제자존(無等山如帝者尊)[무등산 황제처럼 높디높으니]/ 중봉환공진추분(衆峰環拱盡趨奔)[뭇 산봉우리 둘러 맞잡고 다 뒤따르네]/ 방원벽일초정위(方圓闢日初鼎位)[모나고 둥근 것은 만물 열리는 날 처음 자리하고]/ 영측분년시건원(盈昗分年始建元)[차고 기움은 해 나뉠 때 비로소 시작되었네]/ 치란흥망도불관(治亂興亡都不管)[치란과 흥망 모두 아랑곳하지 않고]/ 염량우락자무언(炎凉憂樂自無言)[더위와 서늘함도, 근심과 즐거움도 말하지 않네]/ 회수동해상전후(會須東海桑田後)[결국 동해가 뽕밭이 된 뒤에도]/ 팽박여기부기손(磅礴餘基付幾孫)[광대하게 남은 기틀 후손에 전하리라]

[의의와 평가]

「유서석산」정운희 시 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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