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석산기」[양재경]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369
한자 遊瑞石山記[梁在慶]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59년 - 양재경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18년 - 양재경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2년 - 양재경 무등산 유람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기행문
작가 양재경

[정의]

근대 학자 양재경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유서석산기」를 쓴 양재경(梁在慶)[1859~1918]의 자는 여정(汝正), 호는 희암(希庵)이며, 본관은 제주(齊州)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후손, 아버지는 양후연(梁後然)으로 화순군 능주면 쌍봉리에서 태어났다.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등에게 수학하였다. 저서로 『희암유고(希庵遺稿)』 13권 3책이 있다. 「유서석산기」는 『희암유고』 권8에 실려 있다.

[구성]

「유서석산기」는 유산의 동기와 주상절리의 형상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1. 유산의 동기

양재경은 1912년에 무등산에 오른다. 그리고 유산기 서두에 『맹자』의 「진심」상편의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서는 노나라를 작다고 여기시고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를 가져와 그 이유를 밝힌다. 그러면서 호남의 산 중에서 무등산이 ‘높이 빼어나 거인의 모습을 하였다’라고 하며 진산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본래 과거 시험에 합격 후 무등산 유람을 계획하였으나 54세가 되어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자 답답한 마음에 길을 나선 것으로 보인다.

2. 주상절리의 형상

양재경무등산에 올라 처음 도착한 곳은 광석대였다. 그리고 풍혈대, 상봉, 서석대에 이른다. 아래의 내용은 서석대의 주상절리를 그린 부분이다.

[본문 번역]

서석대는 상봉 아래의 비탈에 있어서 굽어보고 바라보면 우뚝하게 솟아올라 몇 천만 길이 되어 하늘에 닿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비가 내리려는지 한바탕 서늘한 바람이 손을 스치고 발을 휘감고 간다. 이 몸은 완연히 푸른 하늘에 있어 옛적에 이른바 우화등선이라는 것이 대개 이러한 것인가. 또 기암괴석이 곳곳에 널려있었으니 서거나 누운 것, 곧바로 서 있는 것, 바둑돌처럼 둥근 것, 붓처럼 뾰족한 것 등이 황홀하게 배치되어 귀신의 도끼가 오직 여기에만 조화를 다 부린 것을 알겠다. [瑞石在上峰下坂 俯而望 矗立 不知爲幾千萬丈値天 欲雨一陣凉風 掠手繞足而歸 此身完在碧落太虛中 古所謂羽化登仙者 蓋此類耶 且夫奇岩怪石在在鋪列 有起臥者直立者 倒跌者 圓如棋者 尖如筆者 恍惚排置 儘知神斧鬼斤 獨費造化於此地也]

[특징]

「유서석산기」에서 '서석산'은 무등산을 이르는 별칭이다. 길이가 비교적 짧은 편이기 때문에 다른 유산기들에 비하여 무등산의 풍광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석대의 모습만큼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양재경이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의의와 평가]

「유서석산기」는 유산의 동기 부분부터 작자의 유학자적인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동기와 행적, 풍광 묘사와 소회라는 기본적인 유산기의 구성을 지니고 있어 무등산 관련 유산기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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