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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방죽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를 건너기 위해 만든 흙으로 쌓은 다리가 있던 옛터. 광주 토교(土橋)는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경양방죽(景陽防―)과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던 동계천(東溪川)의 물줄기를 가로지르기 위해 설치한 교량이었다. 토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흙을 쌓아 만든 교량 시설로 물줄기는 관로를 통해 흘렀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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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궁동에 있었던 광주문화방송 사옥. 1980년 5월 20일 「계엄일지」에는 금남로에 시민 7만여 명이 모였다고 기록될 만큼 많은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18일 무자비한 계엄군의 시위대 진압은 5월 20일까지 계속되었고, 성난 광주 시민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항의하였다. 시민들은 "광주에서 물러가라"고 외쳤고, 손에 각자 삽· 낫· 곡괭이· 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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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지역에 건립된 조선시대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가 되었던 광주읍성 옛터. 1979년에 간행된 『광주시사』에 의하면, 광주읍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있었던 1909년부터 1918년 사이에 헐고 도로를 개설하여 신시가지를 조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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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내를 통과하여 흐르는 국가 하천인 광주천 천변에 형성된 모래톱에서 열리던 장시. 광주작은장은 음력 2일과 7일에 열리는 큰장에 대비되어 음력 4일과 9일의 작은 장날에 열리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불려진 것이다. 광주작은장은 지금의 서석교와 광주교 사이 광주천에 형성된 큰 모래톱에서 열렸다. 모래톱의 모습은 1917년에 제작된 「광주군 지형도」를 보면 규모와 형태를 잘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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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1910년 조선총독부의 헌병 경찰(憲兵警察)을 주축으로 한 무단통치에 의해 일본군 헌병대가 전라남도 경무부와 함께 전라남도 광주군 성내면 남내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일대]의 옛 전라남도 관찰부(觀察府) 광주 관아(官衙) 안에 광주헌병대본부를 설치하였다. 총부지 847평[약 2800㎡], 건평 218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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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김기권이 운영하던 문방구점이 있던 옛터. 김기권(金基權)은 1926년 전라남도 광주 지역의 항일 학생운동 조직인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던 인물로 1928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퇴학당했다. 김기권은 성진회가 해산된 이후 전라남도 광주 지역 내에 독립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929년 학생소비조합 형태의 문방구점을 지금의 금남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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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주인사와 청년·학생들이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하고 시민 궐기대회를 준비하였던 장소. 녹두서점은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던 전남대학교 학생 김상윤이 만든 서점이다. 서점 이름은 시인 문병란이 지었다. 김상윤은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이후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을 하였다. 유신 통치 아래에서 사회적 모순을 인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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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9일 5.18민주화운동 중 계엄군의 과잉 진압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곳. 1980년 5월 19일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시외버스공영터미널과 가까운 소방서 부근에 장갑차를 몰고 출현하였다. 1000여 명의 군중이 집결하자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자기 친구가 공수부대원에 맞아 죽었다면서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외쳤다. 청년이 직접 공중전화 박스와 가드레일을 부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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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 경찰행정 사무를 담당하던 광주경찰서가 있던 자리.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는 1896년(고종 33) 5월 광주읍성 내 훈련청(訓練廳) 자리에 세운 전라남도경무서(全羅南道警務署)에서 출발하였다. 1905년에는 일본인 경무고문(警務顧問)이 배치되고, 통감부(統監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1907년에는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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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차역의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최초의 철도가 놓인 것은 1913년 10월 1일 목포~대전 간 호남선 철도 송정리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송정리역과 당시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리[약 12㎞]였으며, 그 때문에 철도 연결에 대한 주민들의 열망이 높았다. 그리하여 송정리역과 광주를 잇는 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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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설치된 지방법원이 있던 자리. 대한제국은 1907년 통감부(統監府)의 강요에 의해 근대적 재판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판소 설치와 관련된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12월 23일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관할하는 광주지방재판소가 설치되었으며, 1908년부터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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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각종 범죄자들을 수감하던 광주형무소가 있던 자리.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는 1907년 일제의 통감부(統監府)가 대한제국의 사법제도를 개편하면서 설치한 범죄자 수감시설인 광주감옥을 전신으로 한다. 1908년 7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감옥은 본래 대한제국의 광주감옥을 인계하여 광주읍성 내의 충장로 일대에 있었으나, 1908년 대대적인 신축공사를 벌여 수인(囚人) 공장 등 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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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고등학교 인근에서 계엄군이 모는 장갑차와 시민들이 충돌하자 계엄군이 최초로 발포한 장소. 1980년 5월 19일 사직공원 부근에 공수부대원의 시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조선대학교에 주둔하던 계엄군의 일부가 출동하였다. 계엄군은 장갑차를 몰고 동구 계림동 일대를 돌면서 위협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광주고등학교와 계림파출소 사이의 도로에서 장갑차에 돌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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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는 성터. 운림동 성터는 무등산의 줄기인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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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파견된 일본군이 1907년부터 1923년까지 주둔하였던 병영 옛터.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근대적인 병영이 처음 들어선 것은 1897년(고종 34) 6월이다. 대한제국 전주진위대(全州鎭衛隊) 휘하의 광주지방대(光州地方隊)가 편성되어 참령(參領) 우기정(禹冀鼎) 이 지휘하는 1개 중대 규모의 군대가 광주에 주둔하였다. 당시 이들이 주둔했던 곳은 옛 전남도청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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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터. 백천사(柏川寺)는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448-4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현재는 사찰이 있었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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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원 양성을 위해 1923년 전라남도가 설립한 공립사범학교가 있던 옛터.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전남사범학교]가 폐지된 1929년은 광주학생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 재학생들도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과 함께 당시 항일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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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주남마을에 주둔하며 화순행 버스에 발포하여 시민을 살해하였던 곳.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은 퇴각 명령을 받고 주남마을에 재집결하였다. 조선대학교 뒷산을 넘은 제11공수여단 61대대와 63대대는 5월 22일 새벽 2시 40분경 무등산 산등성이에서 머무르다 아침 8시 30분경 주남마을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11공수여단 62대대는 증심사계곡에 갇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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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지역 청년 문화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이 있었던 자리. 흥학관(興學館)은 1921년 광주의 부호 최명구(崔命龜)가 희사한 돈으로 최명구의 동생인 최종윤이 지역 청년들의 문화, 체육 활동 진흥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흥학관 설립을 맡은 최종윤은 1920년 광주청년회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1년부터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의 총무와 기자로 활동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