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476
한자 金倣-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68년 -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경양방죽의 역사』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5년 -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광주시사』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광주의 전설』에 「개미의 보은으로 된 경양방죽」으로 수록
관련 지명 경양방죽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지도보기
관련 지명 무등산 장원봉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전설|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방
모티프 유형 동물보은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신안동에서 경양방죽김방에 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경양지(慶陽池)는 조선 시대 세종 때 김방(金倣)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1967년까지 광주광역시의 계림동신안동 사이에서 볼 수 있었던 인공 못이다. 그런데 1968년에 태봉산(胎封山)을 허물고, 그 흙으로 경양지를 매립하였다. 김방경양방죽 공사 중에 무너진 개미집을 옮겨 주었는데, 개미 떼들이 그에 보답하려고 쌀을 물어다 주었다. 김방은 공사에 필요한 식량을 얻었고, 제방 축조를 완성했다는 전설이다.

[내용]

경양지는 조선 시대 1440년(세종 22)에 광주의 효천 출신인 김방이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김방은 김제에서 군사(軍事)로 있을 때 김제 벽골제(金堤碧骨堤)[전북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119, 사적 제111호]를 중수하여 김제평야를 곡창지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전임해 와서 경양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흉년이 계속되던 광주와 백성을 걱정하던 김방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옥토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경양방죽을 파게 되었다. 거대한 공사와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일꾼들의 식량도 부족하게 되어 김방의 걱정이 매우 깊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방죽을 파던 중에 큰 개미집이 무너지게 되었다.

김방은 이 개미집을 가까운 무등산장원봉에 옮겨 주었다. 얼마 후 김방의 집 마당에 쌀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그 다음 날도 계속 쌀이 쌓여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아침 일찍 지켜보니 개미 떼들이 쌀알을 물고 와서 마당에 쌓은 것이었다. 김방은 개미들의 보은(報恩)으로 여기고, 이 쌀을 인근의 백성들과 일꾼들에게 나눠 주어 경양방죽을 완성할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광주의 경양방죽을 축조하는 데 있어 개미 떼의 도움으로 일꾼들을 먹일 식량을 충당하였다는 제방 축조와 관련된 전설이다. 개미 떼가 돕게 된 이유는 김방이 무너진 개미집을 구해 줬고, 개미들이 김방에 보은을 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보은담은 거의 대부분이 동물담으로 동물에 빗대어 보은의 논리를 제공한다. 특히, 개미의 보은은 개미가 가진 특성, 작고 부지런하고 힘이 센 특성이 부각되어 작은 쌀알들을 수많은 개미들이 옮겨 수북이 쌓은 것으로 표현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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