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의 정기로 태어난 김덕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518
한자 明堂-精氣-金德齡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89년 - 「명당의 정기로 태어난 김덕령」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봉동 주민 한방옥의 이야기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0년 - 「명당의 정기로 태어난 김덕령」 『광주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채록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봉동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전설|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김덕령의 선조(先祖)|중국인 지관|김덕령
모티프 유형 김덕령의 출생|김덕령의 죽음|음택풍수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전해 내려오는 김덕령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

[개설]

중국의 풍수가가 조선의 명당을 찾기 위해서 필상(筆商)으로 위장하고 조선에 들어와서 김덕령(金德齡)[1567~1596]의 선조(先祖) 집에 머물렀다. 중국의 풍수가가 계란으로 명당을 찾아내는 것을 보고 김덕령의 선조가 그 자리에 묘를 써서 김덕령을 낳았다.

[채록/수집 상황]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봉동에 거주하는 제보자 한방옥(韓芳玉, 남)의 이야기를 채록해서, 1990년 광주직할시가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하였다.

[내용]

김덕령의 선조(先祖)는 무등산 중턱에 집을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중국 필상이 찾아와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중국 필상은 저녁이 되면 집주인에게 계란을 구해서 산으로 올라갔다. 집주인은 필상의 행적을 수상히 여겼다. 하루는 집주인이 중국 필상에게 썩은 계란을 주고 뒤를 쫓았다. 중국 필상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땅에 계란을 묻고 아침까지 기다렸다. 그는 썩은 계란을 묻은 곳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의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여기가 분명 명당인데”라고 읊조렸다. 중국 필상은 다음 날에도 계란을 요구하였고, 집주인은 좋은 계란을 골라서 주었다. 집주인은 이전 날과 같이 중국 필상의 뒤를 쫓았다. 중국 필상은 전날에 갔던 곳으로 가서 다시 계란을 묻었다. 아침이 되자 계란을 묻은 곳에서 닭이 나와서 울었다. 중국 필상은 돌아와서 집주인에게 몇 달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집주인은 계란을 묻어서 닭이 나왔던 곳이 명당이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선대(先代)의 묘를 이장하였다. 중국 필상은 몇 달 뒤에 관 하나를 짊어지고 돌아왔고, 계란을 묻은 장소에 가보니, 이미 누가 묘를 써 놓았다. 중국 필상은 자신이 머문 집주인의 선대 묘라는 것을 알았다. 중국 필상은 집주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그곳이 명당이기는 하지만 중국 사람이 묻혀야 큰 인물이 나지, 조선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중국 필상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이후 명당의 정기를 받고 김덕령이 태어났다. 김덕령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친상(母親喪)으로 제때에 출전하지 못했고, 출전한 뒤에 공을 세웠지만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모티프 분석]

「명당의 정기로 태어난 김덕령」김덕령의 출생과 관련된 풍수설화이다. 이 설화는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김덕령이 역사적으로 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기층민의 관점에서 이야기로 암시해 주고 있다. 이야기는 음택풍수에 대한 기층민의 믿음을 기저에 두고 있으며, 민중적 영웅담의 전형성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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