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매는 소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630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86년 8월 18일 - 「논매는 소리」 광주광역시 광산구[지금의 남구] 칠석동에서 이인식 외 주민의 노래를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논매는 소리」 문화방송에서 간행한 『한국민요대전』-전라남도편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 - 「논매는 소리」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민요』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3년 - 「논매는 소리」 「용전 들노래 조사용역 결과보고서』에 수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5년 - 「논매는 소리」 향토문화개발협의회와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간행한 『광주의 농요 ‘서창만드리’』에 수록
채록지 칠석마을 - 광주광역시 광산구[지금의 남구] 대촌면 칠석동지도보기
가창권역 칠석마을 - 광주광역시 남구 대촌면 칠석동 지도보기
성격 노동요|농요
기능 구분 논에 난 풀을 제거하면서 부르는 노래
가창자/시연자 이인식|이동수|이인석|김형남|김진태|서금동|반동열|이영재

[정의]

광주광역시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은 뒤 논에 난 풀을 제거하면서 부르는 노래.

[개설]

광주광역시 지역에서는 모를 심고 나서 보통 3회 정도 김매기를 한다. 모를 심은 후 20여 일이 지난 후 초벌매기를 하고, 다시 15~20여 일이 지난 뒤 두벌매기를 한다. 이후 10~15여 일 정도 지난 뒤 마지막으로 세벌매기를 한다. 김매기는 더운 여름날 행해지는 매우 고된 노동이기 때문에 두레나 품앗이를 조직하여 공동으로 일을 하였으며,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군들을 격려하기 위해 들노래를 불렀다.

[채록/수집 상황]

1986년 전라남도에서 간행한 『전남의 농요』에 대촌동 칠석마을 「논매는 소리」의 사설과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1993년 문화방송에서 간행한 『한국민요대전』-전라남도편에 광산군 삼도면 송학리 봉학마을 「논매는 소리」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민요』에 광산구 송학동·임곡동 「논매기소리」, 서구 금호동 「논매기소리」, 동구 용연동 「논매기소리」, 남구 칠석동·대지동 「논매는 소리」, 북구 용전동 「논매는 소리」의 사설이 수록되어 있다. 2013년 남도민속학회와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발행한 『용전 들노래 조사용역 결과보고서』에 「논매는 소리」의 사설과 악보가 수록되었다. 2015년 향토문화개발협의회와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간행한 『광주의 농요 ‘서창만드리’』에 「논매는 소리」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018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조사한 「논매는 소리」는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에 「서창 들노래 논매는 소리」와 「용전 들노래 논매는 소리」로 수록되었다.

[구성 및 형식]

광주 지역에서 전해오는 「논매는 소리」에는 초벌매기소리, 두벌매기소리, 세벌매기소리, 장원질[풍장]소리 등이 있다. 초벌매기소리로는 주로 ‘마소리[아리시구나]’가 불렸다. 초벌매기는 호미로 땅을 파엎는 가장 힘들고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그 고단함을 잊기 위해 이 노래를 불렀다. 논매기를 시작할 때 부르는 소리라고 하여 ‘문열개소리’라고도 한다. 북구 용전마을에서는 초벌매기소리로 ‘마소리’ 외에도 ‘지화자소리’를 불렀다. 두벌매기소리로는 ‘사뒤어소리’를 주로 불렀는데, 북구 용전마을에서는 ‘떨아지소리’를 불렀다. 세벌매기소리로는 ‘세우자소리’, ‘덩실로소리’, ‘사앙사절로소리’가 불렸다. 장원질소리로는 ‘아롱저롱[아롱 대롱]소리’와 ‘애리사소리’, ‘방개소리’를 불렀다.

[내용]

「논매는 소리」의 사설 내용은 「모심는 소리」의 사설과 유사하다. 김을 매는 작업을 지시하고 독려하는 내용, 일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용, 점심과 새참을 기다리는 내용, 농사 풍년을 기대하는 내용, 남녀의 사랑을 다룬 내용,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하는 내용 등이다.

다음은 수집 채록된 자료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민요인 남구 칠석동「논매는 소리」의 내용이다.

「논매는 소리」-칠석동

조사 장소: 광산구[지금의 남구] 대촌면 칠석동

조사 일시: 1986년 8월 18일

앞소리: 이인식[남, 1927년생], 정남진[남, 1936년생]

뒷소리: 이동수[남, 1917년생], 이인석[남,1918년생], 김형남[남,1925년생], 김진태[남,1916년생], 서금동[남,1908년생], 반동열[남,1936년생], 이영재[남,1950년생]

초벌매기소리-'마소리'

어허~허/ 불러보세 불러보세/ 오~그렇제 (샛소리) // 어허~허/ 우리도 일심동력으로/ 노래를 불러보세/ (후렴) 아리~시구나~마~뒤~허~ 어허~허/ 잘도 허요 다 잘도 허요// 오~그렇제 (샛소리) / 어허~허

우리네 농군님네/ 한분도 빠짐없이/ 다잘도 합시다/ (후렴) 아리~시구나~마~뒤~허~// 어허~허 /나주나 영산포, 도내기새암에/ 오~그랗제 (샛소리) /생초[상추]나 씻는 저 처녀야/ 생초나 씻어가지고 갈 나름이제/ 질 가는 도령잡고/ 무슨 이야기를 허느냐/ (후렴) 아리~시구나~마~뒤~허~

두벌매기소리-'사뒤어소리'

사~하~ 어뒤~허 어뒤~허~ /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 사뒤어 소리를 낙근낙근/ 하여를 봅시다/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 저 건너 갈미봉 비 묻어 오네야/ 우장삿갓을 허리에 두루고

김 매로 갑시다/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야/ 월출동정에 달이 솟아오네/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우리네 주인양반은/ 어데를 가고야야/ 참거리도 아니나 나오네/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 충청도라 중복송은야/ 주절이 가지가 열렸는데/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 강낭제 강대추는/ 아그작 사그데야 열렸고야/ (후렴) 사~하~어뒤~허 어뒤~허~

세벌매기소리-'세우자소리'

헤~헤에야~ 허~허/ 허이야~세~ 어~허~리나 보~보세/ (후렴) 에~헤에야~ 어~허/ 어이야~세~어허~허~리나 보~보세 // 어허~허~야/ 다 잘도 하시오 다 잘도 허시네/ 우리나 우이야 농부양반들/ 다 잘도 하시네 허 // (후렴) 에~헤에야~ 어~허/ 어이야~세~어허~허~리나 보~보세 // 어허~허~야/ 누치봉에 목화 따는 저 처녀야/ 목화나 따가지고 갈 따름이제/ 진나무꾼 잡고서 무슨 이야기를 허느냐/ (후렴) 에~헤에야~ 어~허/ 어이야~세~어허~허~리나 보~보세 // 오동추야 달은 밝고야/ 임으나 생각이 절로나 나네/ (후렴) 에~헤에야~ 어~허/ 어이야~세~어허~허~리나 보~보세 // 청천하늘에 잔별도 많고/ 요내 가슴에 근심도 많네/ (후렴) 에~헤에야~ 어~허/ 어이야~세~어허~허~리나 보~보세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광주광역시 지역에서는 백중 무렵에 마지막 논매기를 하였는데, 이때 농가에서는 머슴과 일꾼들에게 후한 아침상을 차려 주고 용돈과 휴가를 주었다. 이것을 ‘백중돈 탄다’고 하며, 일꾼들은 농사의 고단함을 백중놀이로 달랬다.

[현황]

기계영농이 보편화되고 농촌 인구가 감소한 이후에는 광주광역시의 들녘에서 「논매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만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용전들노래 시연 행사 때와 서창만드리풍년제 때 해당 마을의 「논매는 소리」를 부른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지역의 「논매는 소리」는 넓고 비옥한 농토를 배경으로 행해지는 논농사의 근간이 되는 민요이다. 영산강 유역인 담양군, 나주시의 농요에서 초벌매기소리로 불리는 "마소리[아리시구나]" 소리가 광주광역시 지역에서도 전승된 것이 확인되어 광주광역시 지역과 영산강 유역은 동일한 민요문화권에 속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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