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0081
한자 玉女峰
영어공식명칭 Ongnyeobong Mountain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남구 주월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현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옥녀봉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남구 주월동
해당 지역 소재지 옥녀봉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남구 주월동지도보기
성격
높이 272.2m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남구 주월동에 걸쳐 있는 산.

[명칭 유래]

금당산에서 북쪽으로 1㎞ 거리 중봉 바로 아래에 있는 둥그렇게 생긴 봉우리가 여성의 둔부같이 완만한 모양의 산이라서 옥녀봉(玉女峰)이라 부르며 등산로도 개발되어 있다. 1970년대 무렵까지는 옥천사 뒷산인 금당산옥녀봉으로 불렀다. 금당산옥녀봉이라는 이칭으로도 불렸다가, 멀지 않은 과거에 금당산 등산객이 늘어가면서 현재의 옥녀봉과 구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금당산에는 동쪽 산기슭에 있는 옥천사와 함께 옥녀와의 전설이 얽혀 있는데, 금당산 밑에 있는 샘 옥천(玉泉)은 여성을 상징한다. 이곳은 옥천사와 함께 여성의 국부와 관련지어 음기(陰氣)가 센 곳이라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지도군총쇄록』(1896)에서는 지도군수 오횡묵이 지도군[현 신안군]에서 광주부로 출장을 가면서 벽진리[극락진]~월산리~매월리~화개리~풍암리~노인고개로 넘어오면서 짚봉산옥녀봉 사이의 고개를 언급하였으며, 광주의 산천을 묘사하면서 광주의 주산은 장원봉이요, 동쪽에는 무등산, 남쪽으로 분적산, 서쪽으로는 옥녀봉, 북쪽으로는 대치산(大峙山)이라고 하였다. 당시 오횡묵 군수는 금당산옥녀봉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옥녀봉 아래의 노인고개는 『1:50000 지형도』-광주[1895]에서 노인현(老人峴)이라 표기하였고, 노치(老峙)라 하기도 하였다.

『진중일지』7에 의하면, 1908년 3월 29일 오후 4시 30분에 의병대장 죽봉(竹峰) 김태원(金泰元)[1870~1908]의 아우 김율(金聿)이 노치 남쪽 고지[현 옥녀봉 일대]에서 기다리던 일본군 광주수비대 이마무라[今村] 중위와 17명의 군사들이 쏘아대는 90발의 총탄에 우리 의병 5명이 죽고 약간의 부상자를 내며 전투를 벌인 후, 오후 7시에 신기리(新基里)에 양민으로 분장하고 숨어들었다가 생포되었다. 『조선지지자료』에 의하면 옥녀봉이 광주군 선도면 동하리[현 서구 세하동]에도 있는데, 동하리는 백마산이 있는 지역이다. 『1:5000 지형도』-광주[2019]에는 금당산 남동쪽 108m 지점에 옥녀봉이 272.2m 높이로 표기되어 있다.

[자연환경]

옥녀봉무등산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지맥이 지장산, 분적산을 거쳐 제석산에서 금당산으로 이어 내려온 산이다. 서구 지역에 있는 낮은 산들은 모두 옥녀봉에서 흘러 내리다가 솟아오른 산이다. 옥녀봉광주월드컵경기장을 가운데에 두고 감싸면서 북쪽으로 짚봉산을 향하여 흘러내리고, 북서쪽으로는 중앙공원을 향하여 흘러내린 황새봉으로 이어지며, 말굽형으로 뻗은 두 줄기의 산을 거느리고 있다.

[현황]

옥녀봉금당산은 정상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국도 제1호선이 지나서 일찍이 개발되어 잘 알려져 있었으나, 북쪽으로 풍암지구가 개발되기 전에는 회재로 노인고개을 넘어선 지역은 한적한 변두리 시골에 불과하였다. 금당산 남쪽 지역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신흥 택지로 개발되었으며, 북쪽으로는 1990년대에 풍암지구가 개발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작은 산이지만 탁 트인 전망과 다양한 경관이 인근 주민들에게 편안한 산으로 인식되면서 원광대학교 광주한방병원 쪽에서 옥녀봉~금당산 정상~황새봉~풍암호수로 이어지는 약 4㎞에 가까운 코스를 등산로 겸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다.

그 밖에 광산구 원산막 동쪽에 있는 산도 옥녀봉이라 부르며, 복룡산[228.3m] 서쪽 지평동에도 옥녀봉[139.6m]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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