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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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芳蔚 |
영어공식명칭 | Im Bang-ul |
이칭/별칭 | 임승근(林承根)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진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4월 20일 - 임방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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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6년 - 임방울, 박재실에게 「심청가」|「흥보가」 사사 |
활동 시기/일시 | 1918년 - 임방울, 공창식에게 「수궁가」 사사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임방울, 유성준에게 「적벽가」|「수궁가」 사사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3월 8일 - 임방울 사망 |
출생지 |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 679[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 679] |
묘소 | 서울 망우리공원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산 57-1 |
묘소 | 남한강 공원묘지 -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곡리 산45-1 |
성격 | 판소리 명창 |
성별 | 남 |
본관 | 나주 |
대표 경력 | 동일창극단|임방울협률사 |
[정의]
「춘향가」 중 ‘쑥대머리’로 판소리를 널리 알린 광주광역시 출생의 근대 판소리 명창.
[개설]
임방울(林芳蔚)[1905~1961]은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임승근(林承根)이다. 1905년 광주 지역에서 협률사를 조직한 김창환이 임방울의 외숙이 된다. 또한, 서편제 명창 이날치, 박기홍이 김창환과 이종사촌 간으로 임방울의 집안은 대대로 판소리 명문가임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임방울은 10세 무렵부터 판소리를 학습하였다. 신문기사를 통하여 자신의 스승으로 박재실과 유성준의 실명을 거론한 바 있는데, 박재실에게 「심청가」, 「흥보가」를 배웠고, 유성준에게 「수궁가」, 「적벽가」, 「심청가」를 배웠다고 한다. 임방울이 어린 시절 박재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던 것은 임방울과 사돈 관계였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또한 박재실이 이날치의 지정 고수였기 때문에 ‘박유전→이날치→김채만’으로 이어지는 서편제 광주소리와도 맥이 닿아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유성준은 동편제 명창인데, 전라남도 구례에 거주하던 유성준을 찾아가 학습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재실과 유성준 외에도 임방울의 스승으로 김창환·김봉이·공창식·조몽실 등이 거론된 바 있다.
임방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5세 무렵 서울의 박람회에서 ‘쑥대머리’를 부른 후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부터이다.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되어 100만 장 이상 팔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고, 협률사 활동을 하며 전국을 순회하였을 때도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임방울의 소리는 매번 변화하는 것으로 유명해 제자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협률사 활동을 하다가도 외부로 돌아다니기 어려운 시기에는 광주에서 지내며 틈틈이 제자들을 키웠던 것으로 확인된다. 임방울의 제자로는 김소희, 정철호를 비롯하여 박화순·신평일·원옥화·조통달 등이 거론된다.
임방울은 근현대 판소리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인물로 추앙된다. 수많은 명창들과 제자들이 거리로 나와 행렬하였던 임방울의 장례식은 신문기사로 보도될 만큼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비록 임방울이 말년에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타계하였으나, 광주 지역은 명창 임방울을 탄생시키고 소리를 키워낸 중요한 터전이었다.
임방울은 오늘날 광주 지역 출신 명창으로 지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광주광역시를 대표하는 명창으로 거론된다. 임방울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7년 7월 1일에는 임방울의 출생지인 광주 송정공원에 기념비를 세웠고, 지금도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또한, 판소리 성지로서 광주광역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하여 1997년부터는 ‘임방울국악제’를 진행하고 있다. 임방울국악제는 2000년부터 대통령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늘날 전국의 소리꾼이 모여들어 경합을 겨루는 국악인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저술 및 작품]
임방울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콜롬비아’ 회사에서 18면 9장의 음반을 취입하였고, 1933부터는 3년간 ‘시에론’ 전속으로 활약하면서 29면에 이르는 음반을 출반하였다. 1936년 광주로 금의환향하여 대공연을 하였는데, 이때 부른 「춘향가」의 한 대목인 ‘쑥대머리’와 「호남가」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만주 등지에서 120만 장이 팔렸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 ‘오케’ 레코드사에서 춘향전 전집 20매[40면], 흥부전 전집 12매[24면] 등 138면 69매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1938년에는 ‘고라이’에서 6면 3매의 음반을 출반하였다.
[묘소]
임방울의 묘소는 1961년 서울 망우리공원에 모셔졌다가 1988년 11월 20일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곡리 산45-1 남한강 공원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에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송정공원 내 '국창 임방울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1994년에는 광주문화예술회관 내 국악당 앞에 '국창 임방울 흉상'이 건립되었다. 1997년부터 임방울을 추모하고 위상을 세우기 위해 ‘임방울국악제’를 실시하고 있다. 2008년에는 '국창 임방울 선생 전시관'이 송정역 내에 개관하여 임방울의 활동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