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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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城廣場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671-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선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12일 - 농성광장 격전지 5.18 사적지 제16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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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농성광장 -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671-2 |
성격 | 광장 |
문화재 지정 번호 | 5.18 사적지 제16호 |
[정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내로 재진입하려 하자 광주 시민과 수습대책위원들이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 장소.
[개설]
1980년 5월 21일 저녁 전라남도 광주 지역 도심에서 철수한 계엄군은 농성광장에 통제선을 설치하였다. 농성광장을 중심에 두고 도심 쪽은 시민군 방어선이, 광주·전라남도 지역의 향토 사단인 제31사단 쪽은 계엄군이 있었다. 시민군과 대치하던 계엄군은 인근 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고, 주변에 사는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5월 26일 새벽 4시 무렵 계엄군은 광주 외곽 봉쇄 지역 세 군데에서 탱크를 앞세우고 밀고 들어왔다. 그중 농성동에서는 계엄군이 국군통합병원 부근에서 도심쪽으로 1㎞나 밀고 들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습위원들은 "우리들이 총알받이가 되자. 탱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우리가 먼저 죽읍시다."라고 말하며 '죽음의 행진'을 시작하였다. 수습위원들 뒤로 시민들이 합류하여 수백 명의 대열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전라남도청을 출발하여 금남로-돌고개-농촌진흥원 앞까지 4㎞ 구간을 거쳐 계엄군 앞에 도착하였고, 얼마 후 계엄군은 원래 위치로 후퇴하였다.
[위치]
[현황]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전라남도청 앞 분수대 주변에 있던 시계탑을 농성광장으로 옮겼다. 시계탑은 20여 년을 농성광장에 있다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어지면서 2015년 본래 자리에 세웠다.
[의의와 평가]
농성광장은 계엄군과 시민군의 격전지이자, 인근 주택가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시민과 시민수습위원들이 '죽음의 행진'으로 계엄군을 물러나게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