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209
한자 宗敎
영어공식명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명철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종교 분파의 총칭.

[개설]

종교(宗敎)[Religion]의 사전적 정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이지만 종교의 어원인 라틴어 ‘religio’는 ‘꺼림직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종교라는 개념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이 반드시 따라야 할 규범이나 제도를 어겼을 때 초월적 존재인 신 앞에서 느끼는 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기원은 신화 시대로 거슬러 가며, 인간이 경험하는 신비스러운 자연현상과 그것의 배후에 숨어 있는 원인자를 신적 존재로 인식하면서부터 출발한다. 고대 자연 신앙에서 출발한 종교는 보편적인 문화현상의 하나로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진보에 상응하여 오늘날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같은 보편적 종교로 발전한다. 현재까지 광주광역시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교는 불교, 천주교, 그리스도교이다.

[불교]

불교는 붓다[Buddha, 기원전 563~기원전 483년경]가 창시한 종교이다. 붓다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자료가 서로 달라 한 가지로 통일하기는 어렵지만, 문헌학적 고증을 떠나 불전문학을 통해서 붓다의 삶과 종교적 의의를 약술하면, 붓다는 히말라야산맥 밑자락인 지금의 네팔과 인도 변경 부근 카필라성에서 샤카[Sakya, 釋迦]족 슈도다나[Suddhodana, 凈飯王]와 마야[Maya, 摩耶]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하늘 위와 땅 아래에 나밖에 존귀한 것이 없다.”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때의 나[我]는 개인적인 자아가 아니라 ‘큰나[大我]’, ‘참나[眞我]’로서, 우리 모두에 내재한 ‘불성(佛性)’ 혹은 ‘신성(神性)’을 뜻한다.

붓다는 16세[또는 19세] 무렵 야쇼다라[Yasodhara]와 결혼하고 아들을 두었으나, 궁궐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궁궐 밖으로 놀러 나갔다가 노인, 병든 사람, 죽은 사람, 출가한 수행자를 만나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한다[사문유관(四門遊觀)]. 붓다는 그 후 29세에 구도의 길을 떠나 출가 후 6년간의 수행 끝에 큰 깨우침을 얻어서 문자 그대로 붓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된다. 불교 용어로 ‘성도(成道)’, ‘성불(成佛)’, ‘대각(大覺)’, ‘대웅(大雄)’이 된 것이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불교 시원(始原)은 지리적으로 백제시대 불교이다. 객관적 자료에 따르면, 백제의 불교는 인도 간다라 출신 마라난타가 남중국 동진을 거쳐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광 불갑사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일설에 따르면 384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며, 지금은 백양사의 말사(末寺)로서 호남 서부 지역의 불교 성지이다. 그런데 전라도 광주 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원효사(元曉寺)증심사(證心寺)송광사의 말사이며, 출토된 유물의 양식 등을 고려해 볼 때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초기 사찰로 추정된다. 따라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전라도 광주 지역의 대부분 사찰은 이 시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이념적으로 유교를 숭상하였기 때문에 불교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민간신앙으로서 여전히 민중들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한국 불교계는 일제의 조선사찰령 이후 중심 세력이었던 대처승 중심의 교종과 선종의 진흥을 통해 불교의 활로를 모색한 선학원 세력 간의 분쟁을 겪었다. 이 분쟁은 1954년 이승만의 불교계 정화 지시로 1962년까지 지속되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통합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설립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는 1966년 이후 15년간 증심사 주도권을 두고 비구와 대처승 간의 대립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같은 해 10월 27일 계엄군을 동원해서 전국 사찰을 탄압하였으며, 특히 1987년 ‘고(考) 김동수 및 5.18민주화운동 희생 민주열사 추모 법회’를 진행하던 광주 원각사 법당에 경찰이 난입한 사건, 문빈정사 난입 사건 등은 불교가 민중 지향의 불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광주광역시의 불교는 현재 조계종 소속의 증심사원효사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세력이 매우 약하다. 광주불교사암연합회에 등록된 사찰은 조계종 소속 28개, 태고종 소속 27개, 원융종 소속 5개, 법륜종 소속 8개, 원효종 소속 11개, 기타 총지종, 천태종, 일붕선교종, 진각종 등에 속한 사찰이 있다. 재가불자(在家佛者) 교육기관으로 광주불교대학, 호남불교대학 등이 있으며 지역 불교 발전과 지역 문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최신 자료 기준 불교 신자는 약 13만 9,000명이다.

[천주교]

천주교(天主敎)는 오늘날 가톨릭[Catholic]이라고 부른다. 그 뜻은 ‘보편적’이며, ‘야훼[Yahweh]’를 섬기던 히브리 민족의 종교인 유대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예수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종교운동이 로마의 공식적인 국교로 발전하여 세계적인 종교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주교가 한국에 전래한 것은 1784년(정조 8)이라고 전해온다. 그 시초는 1783년 말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1864~1930]이 베이징[北京]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지만, 천주교는 선교 초기부터 정부의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조선의 통상수교거부정책과 전통적으로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 때문이었다. 1791년에는 전라도 진산의 윤지충이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사르는 진산사건(珍山事件)에서 발단이 된 신해박해, 중국에서 들어온 주문모 신부를 체포하려다 발생한 1795년(정조 19)의 을묘박해, 정조가 죽은 후 정권을 장악한 벽파(僻派)가 서학(西學)인 천주교는 부모와 군주도 인정하지 않는 반인륜적인 것이라고 박해한 1801년(순조 1년)의 신유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27년 정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를 겪게 되었다. 1831년 조선교구가 공식적으로 설정되었고, 이후 1962년 로마교황청은 한국천주교에 정식 교계제도를 설정한다. 그리하여 대목[교황 대리 교구장]이 관할하는 13개 대목구가 정식 교구로 승격되고, 서울시, 광주시, 대구시에 대교구가 편성되었다.

전라도 광주 지역의 천주교는 1916년 아일랜드의 갤빈[Galvin, E.] 신부에 의해 창설된 선교 단체 ‘성 골롬반회’가 중국을 거쳐 1933년 한국에 진출하면서 시작하였다. 1934년 감목 대리 맥폴린[Mcpolin, Owen] 신부가 전라도 광주보다 신도 수가 더 많은 목포에 성 골롬반회 한국본부를 설치하였으며, 1937년 대구 대목구로부터 광주 지목구를 설정하고, 1962년 교황 요한 23세 때 천주교 광주대교구로 승격하였다. 이후 1938년 북동성당, 1948년 남동성당, 1949년 원동성당, 1966년 방림동성당, 1968년 호남동성당이 건립되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특징 중 하나는 1953년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시작하여 1956년 광주 북동 본당 산하에 설립된 평신도 사도직 조직체인 한국 천주교 레지오 마리에[Legio Mariac, 마리아의 군대]의 총본부가 개설된 것이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1976년 전라남도 함평 고구마 사건 해결을 위해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에는 사태의 진상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를 비롯하여 당시 신군부의 폭력에 항거하는 투쟁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주요 신심단체로는 가톨릭노동청년회, 대학생연합회, 여성연합회, 재속 프란치스코형제회 등이 있다. 수도회로는 메리놀 수녀회, 마리아 수도회, 과달루페외방 선교회, 살레시오 수도회 등이 있다. 의료기관은 1960년에 개설된 천주의성요한병원이 있으며, 교육기관은 살레시오고등학교와 1962년 대건신학교로 출발한 광주가톨릭대학교가 있다.

1937년 4월 13일 설정된 광주 지목구에는 신자가 3,567명, 본당 9개, 공소 36개소이었으며, 1985년에는 본당 60개, 공소 114개, 신자 수는 12만 8,988명이 되었다. 최신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천주교 신자 수는 12만 6,284명으로 다소 줄었으며, 2021년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57개의 성당이 있다.

[그리스도교]

그리스도[Christ, 기름 부음을 받은 자]교의 창시자는 예수[Jesus, 기원전 4~기원후 30년경]라고 알려진다. 예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성서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지만, 기록이 서로 달라서 정확한 출생 연대를 알 수는 없다. 예수는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차별 대우를 받았던 갈릴리에서 자라난 사람이며, 30세 무렵 요단강에 온몸이 잠기는 ‘침례’를 받고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는 체험을 하였다. 그 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고 기도하는 중에 사탄[Satan, 훼방꾼]의 유혹을 물리쳤으며, 예수가 깨우친 내용은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필요한 종교는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처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것 같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막강한 영광과 권위로 세상 위에 군림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이 당대의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종교를 비판하는 파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예수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신의 자녀로서 동등한 인격적 존재이므로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는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위로자요, ‘자비[Compassion, 아픔을 함께하다.]’를 실천한 스승이라는 것이다.

전라도 광주 지역 그리스도교의 시원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미국 남장로회 소속 레이놀즈[Reynolds, W. D.]와 드루[Drew, Dr. A. D.] 선교사가 1894년 3월 28일부터 약 45일간 호남 지역을 답사한 후 1896년 나주에 선교 기지를 확보하고 목포 등지에서 선교를 시작하였으며, 그 후 광주가 행정 중심지가 되면서 1904년 광주에 새로운 선교부를 신설하고 유진 벨[Bell, Eugene][한국명 배유지], 오웬[Owen C. C.][한국명 오원], 프레스톤[Preston, J. Fairman][한국명 변요한] 등 9명의 선교사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광주 지역 최초의 교회는 1904년 12월 25일 유진 벨 선교사의 집에서 처음 예배를 시작하면서 생긴 광주제일교회이다. 당시에는 북문안교회로 불리다가 1919년 남문밖교회 또는 금정교회, 남부교회로 불렸으며, 1952년부터 전라도 광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해서 ‘광주제일교회’로 부르게 되었다. 연이어 1907년 광주중흥교회, 1917년 광주중앙교회, 1924년 광주양림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백영흠, 강태국, 최기영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전반에 광주전방교회, 광주학동교회, 광주계림교회, 광주월산교회, 광주무등교회, 광천교회 등이 설립되었고, 침례교파의 북동교회, 성결교파의 제일교회, 안식일파의 계림교회, 감리교파의 제일교회가 설립되었다.

1964년 74개 교회 내 교인이 12,604명이었으나, 1980년에는 교파 총합 149개 교회 내 교인이 38,684명으로 증가하였다. 최신 통계 자료에 따르면, 광주광역시의 그리스도인은 약 29만 2,000명이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1910년에 완공된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광주 최초의 여학교인 광주수피아여자중고등학교가 있다. 대학은 1989년 호남신학대에서 1992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호남신학대학교, 1948년 ‘광주성서학관’에서 출발하여 1954년 ‘광주 고등성경학교’로, 그 후 1996년 설립인가를 받은 광신대학교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1904년 목포에서 광주로 온 선교사 오웬양림동에 개설한 제중원에서 시작된 광주기독병원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그리스도교는 선교 초기부터 교육 및 의료봉사에 앞장서고 현재도 다양한 선교와 사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거리가 먼 지나친 당파성, 과잉선교, 물질만능주의 등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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