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3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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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의미역 | Ancient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김덕원 |
[정의]
초기국가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경기도 광명 지역의 역사와 문화.
[개설]
역사학에서 고대는 선사시대 이후부터 중세 이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한다. 이 시대에 존재하였던 사회 구성체와 정치 조직체를 고대 사회와 고대 국가라고 하는데, 이 시기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영역 국가를 형성하고, 강력한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중앙 집권적인 관료제(官僚制)와 율령(律令)을 실시하였으며, 왕위의 부자 상속인 세습제를 확립하고, 불교를 수용하여 사상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구 유럽의 근대 역사학이 전래된 이후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사의 시대 구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해방 이후 1960년대에 일제의 식민사관을 청산하려는 의도와 맞물려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70년대 이후에는 고고학의 발굴 성과와 인류학의 이론과 같은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고대의 시기에 대해 재검토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다양한 관점에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의 고대 시기를 대체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국가적으로 성장·발전하면서 정립(鼎立)하기 시작하였던 4세기 이후부터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이전인 통일신라까지로 이해하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고대의 시기를 고조선부터 통일신라까지로 확대하는 견해가 점차 호응을 받고 있다.
[변천]
고대의 광명 지역은 원래 백제의 영역이었으나 475년(개로왕 21)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침입으로 한성(漢城)이 함락되고 개로왕(蓋鹵王)이 전사한 이후 고구려의 영역이 되었다. 이후 율목군(栗木郡)이 설치된 후 광명 지역은 그 영현(領縣)의 하나인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재편성되었다.
551년(성왕 29)에 백제의 성왕(聖王)은 나제동맹(羅濟同盟)을 바탕으로 신라의 진흥왕(眞興王)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유역을 회복하였으나 553년(진흥왕 14) 신라의 공격으로 다시 이곳을 상실하였다. 신라의 진흥왕은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한 후 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하는 활발한 북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후 557년(진흥왕 18)에 신주가 폐지되고 북한산주(北漢山州)가 설치되는 등 몇 차례의 변천을 거치다가 664년(문무왕 4)에 한산주(漢山州)로 확정되었다. 685년(신문왕 5)에는 전국을 9주(州) 5소경(小京)으로 편제할 때 9주가 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는 한주(漢州)로 개칭되었다.
이와 같이 고대의 광명 지역은 한강 유역을 확보하려는 삼국의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은 나당전쟁(羅唐戰爭)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이후에는북쪽의 발해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광명 지역에서는 고대의 이러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관련된 조사·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