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54 |
---|---|
한자 | 丘致崑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Gu Chig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성격 | 능묘 |
---|---|
양식 | 쌍분 |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 |
관련인물 | 구차숭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
[정의]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구치곤의 묘소.
[개설]
구치곤(丘致崑)은 본관이 평해(平海)이며, 증조부는 구천우(丘天雨), 조부는 병조참의를 지낸 구춘보(丘春甫), 아버지는 영해부사(寧海府使)와 예빈시판사(禮賓寺判事)를 역임한 구차숭(丘次崇)이다. 외조부는 김윤(金贇), 장인은 조후지(趙厚之)이다.
1464년(세조 10) 진사로서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1479년(성종 10) 장령, 1496년 좌부승지, 한성부우윤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대사헌이 되자 임금에게 직접 어진 선비와 대부들을 면접하여 성학을 넓힐 것과 관작이 범람해짐을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환관 김효강(金孝江) 등이 정치에 참여하자 이들에게 죄를 물을 것을 청하였으며, 왕이 불교를 숭상하기 위하여 소상재(小祥齋)와 대상재(大祥齋) 등을 마련하자 이를 반대하며 경계할 것을 주장하였다. 1497년에 동지중추부사로서 명나라에 가서 효종의 생신을 축하하고 돌아온 뒤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였으며, 1499년 다시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
[위치]
구치곤 묘는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골 뒷산 평해구씨 묘역에 있으며, 지방도 351호선과 지방도 397호선을 잇는 포장 소로와 바로 인접해 있다.
[형태]
구치곤의 무덤 주위에는 3기의 무덤이 있는데, 구치곤 묘는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쌍분으로 묘표와 상석, 장명등,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현황]
평해구씨 묘역 주변에는 모두 4기의 무덤이 있는데, 구치곤의 무덤을 중심으로 우측 아래쪽으로 구차숭의 무덤이 있고, 위쪽으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무덤 2기가 있다. 구치곤의 묘표는 1990년에 세운 것이다. 문인석을 비롯한 석물들은 모두 단출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구치곤의 묘소는 조선 전기의 무덤 양식과 석물 구조를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