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0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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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영어의미역 | Gimhae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집필자 | 권만용 |
[정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두조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광명시 세거성씨.
[연원]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았다. 10세손 구형왕(仇衡王)은 532년(법흥왕 19) 신라에 항복하고 상등 작위와 가락을 식읍으로 하사받았고, 구형왕의 아들 김무력(金武力)이 각간(角干)을 역임하게 되면서 가문이 크게 번창하였다. 이후 김수로왕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약 148개 파로 나누어졌다.
김목경(金牧卿)을 중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목경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菅)을 중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 밖에 김수로왕의 56세손 김유공(金維公)을 파조로 하는 판서공파, 51세손 김지서(金之瑞)를 파조로 하는 승사랑공파, 김평(金平)을 파조로 하는 양의공파, 김명택(金明澤)의 후손인 판전공파, 김불비(金不比)의 후손인 판서공파, 김만희(金萬希)의 후손인 좌정승공파가 있다.
또한 김종정(金宗貞)의 후손인 숭정공파, 김천익(金天翼)의 후손인 부호군파, 김을동(金乙棟)의 후손인 판결사공파, 김문(金汶)의 후손인 진사공파, 김이장(金以章)의 후손인 충정공파, 김운(金蕓)의 후손인 유수공파, 김대진(金大震)의 후손인 운은공파, 김탁(金琢)의 후손인 문경공파, 김근(金瑾)의 후손인 부사공파, 김관(金鑧)의 후손인 한림공파, 김구(金球)의 후손인 충정공파가 있다.
김련(金璉)의 후손인 도사공파, 김현(金現)의 후손인 숭정공파, 김호(金琥)의 후손인 휴은공파, 김선(金璇)의 후손인 장사공파, 김인서(金麟瑞)의 후손인 참봉공파, 김득하(金得河)의 후손인 대제학공파, 김경신(金敬臣)의 후손인 도총관공파, 김천여(金天與)의 후손인 김덕휴(金德休)로 이어지는 첨정공파 등이 있다. 김해김씨는 조선시대에 정승 1명, 공신 5명, 청백리 4명, 대장 1명, 판서·군수·목사 및 기타 관직에 2,700여 명을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김해김씨대동보(金海金氏大同譜)』에 따르면, 충청북도 진천에서 시흥으로 이주해 온 판서공파 김두조(金斗祚)의 처 수원최씨 최악덕(崔岳德)의 효행이 알려져 홍살문과 함께 시흥동 박미고개 땅을 하사받은 것으로 미루어 이때부터 광명시에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두조의 23세손 김창순은 한학과 중국어에 능해 원광명에서 서당을 열어 백상철·왕재명·민병욱 등 많은 후진을 양성했고, ‘정의’를 좌우명으로 몸을 수련하여 ‘산부처’로 불렸다.
[현황]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85년 11월 당시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한 김해김씨는 총 4,683 가구에 1만 8286명이었다.
[관련유적]
광명시 광명7동 575-15번지[원광명안로 22-6]에 최악덕에게 내려진 홍살문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열녀문에는 ‘열효지문(烈孝之門)’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최근까지 최악덕의 10세손 김세겸의 집을 ‘홍문집’이라고 칭할 정도로 최악덕과 홍살문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김해김씨선원세보(金海金氏璿源世譜)』에는 효종 대에 홍살문이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여지도서(與地圖書)』·『경기읍지(京畿邑誌)』 등에는 1741년(영조 17)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