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101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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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駕鶴洞-家屋 |
영어의미역 | House of Gang Sinha in Gahak-dong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782-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양철원 |
성격 | 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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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87년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782-1 |
소유자 | 강신하 |
[정의]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던 개항기 전통 가옥.
[위치]
광명역사를 뒤로 하고 서독터널을 지나 600m 전방의 사거리에서 좌회전, 230m 전방 도로변 바로 오른쪽에 광명시 가학동의 강신하 가옥이 있다. 근처에 청기와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남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대청 상량문의 묵서는 ‘귀룡숭정기원후성상이십사년정해삼월십이일미시입주상량가주을묘생계좌정향용귀(龜龍崇禎紀元後聖上貳什肆年丁亥參月拾貳日未時立柱上樑家主乙卯生癸坐丁向龍龜)’로, 여기서 성상(聖上) 24년 정해(丁亥)는 1887년(고종 24)으로 확실히 연대 추정이 된다.
바깥채는 시멘트 건물인데, 원래는 초가에 약 20칸 규모로, 안채보다 더욱 오래되었다고 한다. 외양간, 창고, 사랑방이 있었으며, 1930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고쳐 지었다. 안채는 변형 부분이 없으며 집 뒤로 공세동길이 지나고 있다. 1988년도에 강신하가 유형연의 집안으로부터 매입하였으나 바깥채 건물에 살고 있으며, 박금순이 안채에서 그냥 살고 있다.
본래 광명시 가학동의 강신하 가옥은 성씨 문중에서 지은 집이고, 유형연의 집안은 시흥에 세거하던 문화유씨의 후손으로, 이곳에 집성인 성씨 문중과 사돈 관계가 형성되면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가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로, 시집 고조부가 시흥시 능곡동에서 살다가 현 위치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안채는 지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안채는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남향집이고 살림채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는 시멘트 블록으로 개축되었으며, 뒤쪽 날개로 가건물을 달아내어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부엌 출입문 앞쪽으로 2m 떨어진 안마당에 우물이 있다.
[형태]
‘┌’형의 안채와 ‘─’자 형의 사랑채, 그리고 사랑채 뒷날개의 부속 건물로 튼 ‘ㄷ’자 를 이루고 있다. 원래 사랑채는 ‘┚’ 형태의 평면을 갖고 있었다고 하므로 우상(右上)과 좌하(左下)가 트인 ‘□/’ 배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안채는 술좌진향(戌座辰向)의 남동향이다.
[현황]
안채는 시멘트 기와의 팔작지붕이다. 안채 뒤편으로 굴뚝이 나 있고 낮은 석축을 쌓아 기단과의 거리를 두고 식재하였다 뒤꼍 담장 바로 뒤로 땅을 높이 돋우어 도로가 나 있다. 원래는 부엌 뒤쪽으로 담장을 두르고 아늑한 공간에 장독대가 있었다. 2010년 1월 가학로 확장 공사로 멸실되었다.
[의의와 평가]
안채의 보존 상태는 상당히 훌륭하다. 군데군데 시멘트 마감이나 현대화된 세시로 실용화와 방한 문제를 극복하려 한 부분도 있지만, 대청마루의 바닥에는 윤기가 흐른다. 대청의 대들보와 서까래의 연등천장도 목부재와 더불어 치받이흙의 상태가 양호했으나, 차로의 확장으로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