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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탄생의 밑거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A020302
지역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설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학

광명시의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소하2동소하동 일부 및 일직동으로 이루어진 동이다. 면적은 7.2㎢로, 광명시 전체의 18.7%에 이르는 도·농 복합 지역으로, 전체 면적 중 69.4%가 그린벨트 등으로 다양한 행정 수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서면 소하리를 대표하는 마을로 자리 잡다]

조선시대부터 1981년 광명시 탄생에 이르기까지 설월리는 옛 시흥군 서면의 행정 중심지로 번성했던 소하리의 대표적인 마을이었다. 설월리는 예전부터 안산, 시흥 사람들이 서울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을 앞을 경유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달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현이 정비되면서 시흥군 남면과 서면시흥군 서면으로 통합된 뒤 이곳 설월리서면사무소와 소하리 경찰관주재소, 서면공립보통학교[현 서면초등학교]가 세워지면서 서면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당연히 취락의 규모도 커졌다.

조선의 청백리로 유명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7~1634]의 종택을 비롯해 오리 이원익 영우관감당 등 경기도 문화재와 충현서원 터, 이원익 묘소 및 신도비 같은 경기도 기념물이 보존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소하2동은 예부터 역사·문화·교육의 마을이었다.

이곳에는 현재 이원익 대감의 유물과 유적을 전시하기 위해 광명시에서 오리이원익기념관을 건립해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건대 소하2동이야말로 광명시 탄생의 모태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역사·문화·교육의 마을 소하동]

이런 역사적 배경과 토양 위에서 소하리는 1919년에 광명 지역에서 가장 많은 3·1독립 만세 운동가들을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에 들어서는 노동 운동과 문화 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1927년 근대적 의미의 최초의 교육 기관인 서면공립보통학교가 개교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뜻 있는 청년들이 활발하게 펼친 농촌 계몽 활동이 시흥군에서 어느 지역 못지않게 활성화된 지역이 소하리였다. 문맹에서 벗어나자는 열망 속에 펼쳐진 소하리 야학은 당시 소하리 주민들의 교육열 및 주민의식의 성숙도를 시사한다.

이 계몽 운동은 일찍부터 소하리에서 학교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초의 공립학교인 서면공립보통학교 개교와 만세 운동의 중심인물들 다수가 소하리 출신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이러한 지역 정서가 곧 야학에 대한 높은 참여 열기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소하2동은 오랜 옛날부터 시흥군 서면의 역사·문화·교육의 중심지로서 기능했고, 서면 행정의 중심지로서 높은 교육열 등이 뒷받침된 성숙한 주민 의식으로 1981년 신생 광명시가 탄생할 때 광명 지역의 전통과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제 위상을 뽐내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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