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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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早谷里 耽津 安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중휘 |
개설 시기/일시 | 1500년 전후 - 조곡리 탐진 안씨 집성촌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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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조곡리 탐진 안씨 집성촌 -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
성격 | 동성 마을 |
가구수 | 34가구 |
인구[남/여] | 60명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에 있는 탐진 안씨 집성촌.
[개설]
조곡리 탐진 안씨 집성촌은 전라남도 강진군을 본관으로 하는 탐진 안씨의 동성 마을이다. 탐진 안씨의 시조는 고려 말 나라에 공을 세워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진 안원린(安元璘)이다. 조곡리에는 문정공(文靖公) 안지(安止)의 증손자인 안인석(安仁碩)[1471~?] 대부터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명칭 유래]
탐진 안씨 집성촌이 자리한 조곡리는 원래 이리실 혹은 노곡 등으로 불렸는데, 조곡서원(早谷書院)이 생기면서 조곡마을로 개칭되었다. 한편, 이리실이라는 이름과 관련하여서는 이른 아침 산에 올라 보니 이슬이 유난히 빛나 이리실로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형성 및 변천]
조곡리 탐진 안씨 집성촌은 안지의 증손자인 안인석이 경산현령으로 부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안인석의 아버지 안수명(安受命)이 세상을 떠나자, 안인석은 자인현(慈仁縣) 조곡리에 아버지의 묘를 마련하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후 안인석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환경]
탐진 안씨 집성촌이 자리한 조곡리는 남산면 소재지의 남서쪽에 있다. 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농촌 마을로, 주위에 많은 저수지와 못이 분포해 있다. 마을 북서쪽 도날산에는 말발굽이 군데군데 찍힌 말쭉바위, 산신령이 마셨다고 하는 참샘이 있다. 또한 마을에는 무지개샘이 있는데, 비가 오면 무지개가 잘 보였다고 한다.
[현황]
탐진 안씨 집성촌이 자리한 조곡리에는 1993년 당시 총 105호가 거주하였는데, 탐진 안씨는 34호였다. 탐진 안씨 이외에 김녕 김씨도 24호가 조사되어 두 성씨가 공존하는 집성촌의 양상을 보였다. 2020년 현재 조곡리의 총가구와 인구는 119호 240명인데, 탐진 안씨는 6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마을 주민의 주 생업은 복숭아를 중심으로 한 과수 농사이다.
마을 지명의 유래가 된 조곡서원은 1794년(정조 18)에 자인 지역 유림들과 마을의 탐진 안씨 후손들이 함께 세운 것으로, 오성군(鰲城君) 안우(安祐)와 문정공(文靖公) 안지(安止)를 배향하고 있다. 또한 마을 입구에는 안지의 덕을 기리는 안지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뒷산 깊숙한 곳에는 안인석이 시묘살이를 하던 자리에 건립한 재실인 영모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