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807
한자 張德祚
영어공식명칭 Jang Deokjo
이칭/별칭 춘금여사(春琴女史),일파(一波),노노자(怒怒子)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 10월 13일연표보기 - 장덕조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대구여자보통공립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29년 -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고] 퇴학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32년 -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 중퇴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육군 소속 종군 작가
활동 시기/일시 1953년 - 영남일보 중군기자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매일신문 문화부장 겸 논설위원
활동 시기/일시 1976년 -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몰년 시기/일시 2003년 2월 17일연표보기 - 장덕조 사망
출생지 순원마을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76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성격 소설가
성별
본관 인동
대표 경력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정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소설가.

[개설]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단편 120편과 장편 90여 편을 남길 정도로 다작의 작가였으며, 신문 연재소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다. 초기 단편소설부터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킨 작품군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성 문제와 생활문제, 부부 문제 등 여성의 관점에서 합리화하는 측면이 있어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활동 사항]

장덕조의 본관은 인동(仁同)으로 춘금여사(春琴女史)·일파(一波)·노노자(怒怒子)라는 필명을 썼다. 1914년 10월 13일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 북사리[현재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순원마을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진학하여 대구여자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하였다. 이후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다. 1932년 『개벽』 기자로 입사한 후, 같은 해 『제일선』 8월호에 단편 「저희(低徊)」가 이태준의 추천으로 발표되었다. 이어 『신동아』 12월호에 「인형 빼앗긴 조카」를 발표한 이후 1930년대에만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해방 후부터 70대인 1980년대 말까지 120여 편의 단편소설과 90여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장덕조는 신문 연재소설에 천착하였기 때문에 대중소설 작가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역사소설을 다수 창작하였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도 언론사에서 근무하였다. 1976년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6·25전쟁 당시 최초의 여성 종군작가로도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저술한 몇 편의 친일 작품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저술 및 작품]

단편소설로는 「저회」, 「해바라기」, 「아내」, 「약혼」, 「정청궁한야월(貞淸宮閒夜月)」, 「여자의 마음」, 「창백한 안개」, 「함성」 외 120편, 장편소설로는 『은하수』, 『새로운 군상』, 『십자로』, 『훈풍』, 『다정도 병이련가』 외 90여 편이 있다. 1989년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14권에 달하는 대중소설 『고려왕조 5백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사회적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보다 낙관적 인생관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흥미를 끄는 작품을 주로 썼다. 신문 연재소설이나 역사소설에 관심이 일관되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상훈과 추모]

장덕조는 1953년 문화훈장 보관장, 1987년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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