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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심리 화심 의령 여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401662
한자 花心里花心宜寧余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of Uiryeong Yeo Clan in Hwasim, Gagok-ri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연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476~1506년
변천 시기/일시 1750년경
재실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 양심재
성격 집성촌|동성 마을
면적 1.44㎢
가구수 약 50가구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리에 있는 의령 여씨 집성촌.

[명칭 유래]

화심은 1750년경 의령 여씨가 옮겨 와 정착하여 살면서 광비등(光碑嶝) 또는 화심(和深)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마을 부근에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경상도절제사 하한(河漢)과 그의 부인 박씨의 묘와 큰 비석이 있어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 1872년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화심(花心) 형국이므로 화심으로 바꾸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연산군의령 여씨 여승탁(余承鐸)이 의령에서 오늘날의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로 이거한 이래, 1750년경 후손이 화심으로 들어와 터를 닦아 후예들이 집단으로 옮겨 오면서 의령 여씨 집성촌을 이루었고, 100여 년 전부터 대외적으로 의령 여씨 세거지로 알려졌다. 화심은 묵은터, 고래들, 산정까끔, 무딤이, 용굴, 광비등, 큰땀, 작은땀 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이농 현상이 심해지면서 자연 마을 대부분은 없어지고 중심 마을인 큰땀이 행정 마을로 존재한다.

[자연 환경]

화심리 화심 의령 여씨 집성촌은 지리산 줄기인 풀잎산 기슭에 멀리 섬진강을 굽어보며 자리 잡은 남향받이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현황]

화심리 화심하동읍 중심지에서 서북쪽으로 4㎞ 떨어져 있다. 2010년 12월 현재 면적은 1.44㎢이며 총 89가구에 207명[남자 102명, 여자 10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중 의령 여씨는 약 50가구이며 이 밖에 강씨, 김씨, 고씨, 박씨, 백씨, 이씨, 서씨, 한씨, 황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거주한다. 마을 앞 농경지는 섬진강 범람으로 침수 피해가 심했으나 제3공화국 이후 지역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제방이 축조되어 수해에서 벗어난 뒤 경지 정리 사업으로 기계화 영농 기반이 조성되어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산지와 산기슭 농지에서 배, 밤, 매실을 비롯한 과수 농사를 지으며, 최근 쌀값 하락과 함께 벼농사가 쇠퇴하자 우량 농지도 과수원으로 바뀌고 있다. 마을 앞을 지나 국도 19호선이 2차선으로 확장되어 차량 통행량이 많고, 현재 4차선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관련 유적으로 의령 여씨 재실인 양심재(養心齋)가 있다. 양심재는 구한말 우국지사 최익현(崔益鉉)이 찾아보고 시를 남기기도 했던 유서 깊은 재실이다. 만석꾼으로 알려진 참봉 여종엽(余宗燁)의 집터와 잔존 건물들도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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