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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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浦口 |
영어공식명칭 | Port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고대/삼국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바다에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개설]
해남군 지역의 포구는 나루와 포구를 혼용하여 쓰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용례로 쓰이기도 한다. 즉, 나루는 상대 나루로 건너가는 작은 규모의 선착장이 있는 지점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된 것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나루는 다시 진(津), 도(渡), 양(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해남군 지역에서는 나루와 포구를 통칭하여 포구라 칭하기로 한다. 포구는 강에 있는 강상 포구와 바다에 있는 해상 포구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남에는 큰 강이 없어 해상 포구만 존재한다.
[포구 형성의 지리적 배경]
우리 국토는 험난한 산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예부터 육로(陸路)보다는 해로(海路)가 교통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일찍이 해안(海岸)과 하안(河岸)을 따라 수많은 나루와 포구들이 발달하였고, 이들은 상호간 유기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해남군 지역도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선으로 되어 있다. 더욱 연안 뱃길에서 남진하다 동진하며 꺾어지는 모서리 지점에 있다. 고대부터 한·중·일 연안 뱃길을 통한 문화 이동에 있어서 중요한 곳이었다.
전라남도 최대의 군역을 자랑하는 해남군은 크게 3개의 반도, 즉 해남반도와 화원반도와 산이반도로 이루어져 있다. 화원반도와 산이반도는 서북쪽으로, 해남반도는 두륜산과 달마산을 등줄기 삼아 남북으로 뻗어 있다. 해남군은 강진군·영암군과 접하는 동북쪽만이 내륙으로 연결된 육지이고 나머지 3면은 바다로 내달린 형국이다. 이렇게 굴곡진 해안 곳곳에는 넓은 간석지와 갯수로가 발달한 아늑한 만이다. 따라서 곳곳에 바닷길을 항해하는 배들이 접안하는 해상포구가 자연스럽게 발달되었다. 또 화원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진도와 신안의 섬, 해남반도의 남쪽에 놓여 있는 완도 등 수많은 섬들은 먼 바닷길에서 징검다리의 역할과 방파제 구실도 하지만 물길의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어 경우에 따라서는 안전 항해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포구 문화의 형성]
이와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해남군에는 각처에 포구와 관련된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고대부터 국내외간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 세력이나 해양 문화가 흥기할 수 있었다. 철기시대의 군곡리를 비롯한 백포만 세력의 형성, 옹관 고분 사회의 형성, 고대 왜와의 교류와 신미제국, 전방 후원형 고분의 형성, 청자 집단 가마터의 형성 등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왜구의 침탈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각 처에 축성된 20여 개의 성이 이를 반증하기도 한다. 또 고려 공민왕 시기의 해남현 침입, 달량진의 3차례 왜변, 정유재란 시 명량대첩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각처의 포구에 수군진을 설치하였다. 우수영에는 전라수영과 전라우수영을, 어란, 달량, 이진, 갈두진 등에는 관방진을 설치하였다.
[나루의 발달과 현황]
인근의 섬과 제주를 왕래하는 포구들이 형성되었다. 완도 간에는 달량, 보길도 간에는 갈두, 진도 간에는 삼지원과 주량이 설치되었다. 특히 제주 간 가장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여 제주를 왕래하는 포구와 관련한 역사 문화도 형성되었다. 어란, 삼촌포, 관두포, 달량, 이진, 입암포 등이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되었던 해남 지역 포구이다. 황원목장이나 입암포의 목장성 축조, 현산면 구산성의 축성 등이 제주와 관련된 역사 문화이다. 해남군은 곳곳에 간척이 이루어져 포구들이 대부분 소멸되었다. 대규모로 이루어진 1988년의 고천암제방 준공, 1993년 영암호 간척 제방 준공에 이어 1995년 금호호제방이 준공되면서 대부분의 나루와 포구가 기능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