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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반도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030
한자 南陽半島
영어공식명칭 Namyang Peninsula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마도면|서신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지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남양반도 - 경기도 화성시
해당 지역 소재지 남양반도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마도면|서신면지도보기
성격 반도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서신면·마도면에 걸쳐있는 반도.

[명칭 유래]

남양반도(南陽半島)는 조선 시대 남양도호부에 속하였던 곳이어서 남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특징]

남양반도는 조석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하루에 두 번씩 일정한 방향으로 발생하는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포구에서 출항하는 선박들이 가까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남양반도 일대에는 포구들이 자리를 잡고 교통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남양반도 내의 서신면에는 삼국 시대의 대중국항인 당성이 위치해 있었는데, 당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삼국 시대부터 남양반도의 포구들이 중국과의 교류에 요충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과의 교류 외에도 남양반도 일대에 있는 포구들은 경기만 및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연결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남양반도송산면 고포리 마산포는 20세기 초까지 포시장(浦市場)이 열렸던 곳으로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마산포를 중심으로 다른 포구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으로 내륙과 남양반도 내의 소규모 중심지인 장시(場市)와도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 이후, 철도와 도로의 건설로 인해 새로운 교통망이 형성되었고 지역 구조 또한 해로 중심에서 육로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남양반도는 넓게 발달한 간석지와 높은 일조량으로 인해 조선 시대부터 소금 생산지로 유명했으며 남양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따르면 남양반도 내에는 포구들이 많았으며 대부분 소금 생산과 운반에 관련이 많았다고 한다. 남양염은 남양반도의 포구에서 한강을 따라 마포로 이동하였으며, 다시 북한강과 남한강을 따라 내륙까지도 운반되었다고 한다.

[자연환경]

남양반도는 조석 간만의 차가 매우 큰 경기만에 속해있어 경기도에서도 가장 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넓은 갯벌과 조석 간만의 차로 인해 염업, 굴과 바지락을 채취하는 갯벌어업, 어선어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남양반도에는 구릉성 평지가 넓게 분포하지만 하천이 발달하지 않아 전통적으로 농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남양반도에 사는 주민들은 남양반도를 ‘비산비하(非山非河)’ 즉 ‘산도 강도 없는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뜻은 “산이 있어 골을 따라 흐르는 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비산], 강을 따라 흘러온 물이 있는 곳도 아니다[비하].”라는 말로, 몹시 가물뿐만 아니라 가뭄이 들면 농사짓기가 곤란한 고장이라는 의미이다.

[현황]

남양반도의 모습이 급격하게 바뀌게 된 것은 1986년 시작된 시화지구개발사업부터였다. 시화지구개발사업은 대부도, 선감도, 불탄도를 화성군과 연결하였고 1987년부터 1994년까지는 시화방조제가 건설되었다.

시화방조제는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를 잇는 총길이 12,676m의 방조제이다. 시화지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어섬우음도는 더이상 섬이 아니라 육지화되었다. 남양반도 남쪽에는 서신면 궁평리우정읍 매향리를 연결하는 총길이 9.8㎞의 화성방조제 건설로 화옹지구와 화성호가 생겨났다. 이와 같은 간척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남양반도의 모습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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