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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 윤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52
한자 坡平 尹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상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파평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입향지 파평 윤씨 입향지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송산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파평 윤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송산리 지도보기|마도면 청원리지도보기|동탄동|비봉면 청요리지도보기|팔탄면 율암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윤신달
입향 시조 윤배식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배식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파평 윤씨 시조는 후삼국 통일에 기여한 공으로 고려 초 공신 반열에 오른 윤신달(尹莘達)이다. 「윤성연원고(尹姓淵源考)」에는, 시조가 파주 파평산 아래 용연(龍淵)이란 못에 떠오른 옥함에서 나왔는데, 함을 건진 노파의 성을 따라 윤씨가 되었다거나, 손바닥에 '윤(尹)'이란 글자가 있어 성으로 하였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한편, 윤신달의 5세손 윤관(尹瓘)[?~1111]이 여진족을 평정하고 동북구성을 쌓은 공으로 영평현(鈴平縣)[영평은 파평의 별칭] 개국백(開國伯)에 봉하여지자, 이후로 후손들이 파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파평 윤씨는 고려 시대 유력 성씨 중 하나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4명의 왕후를 배출하는 등 번성하였다.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 편에 서서 공신이 된 윤곤(尹坤)[?~1422]도 파평 윤씨이다.

[입향 경위]

파평 윤씨 화성 지역 입향조는 윤신달의 31세손 윤배식(尹培植)이다. 윤배식의 후손들은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송산리에 거주하는데, 윤곤의 셋째 아들 윤삼산(尹三山)[1406~1457]을 파조로 하는 영천부원군파에 속한다. 증언에 의하면 윤배식이 융건릉에서 일하게 된 이후 200년 가까이 송산리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화성 지역에는 송산리 이외에도 여러 곳에 파평 윤씨들이 거주하고 있어 윤배식 이외의 다른 입향조도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명확히 알려진 경우는 없다.

[현황]

파평 윤씨 화성 지역 집성지는 양감면 송산리 이외에 마도면 청원리의 청산동, 동탄동 진구리, 비봉면 청요리, 팔탄면 율암리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막산이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청산동에는 1950년대에 22세대에 달하는 파평 윤씨가 거주하여 남양 홍씨와 함께 마을의 대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후 2015년 조사에서는 파평 윤씨가 전체 30세대 가운데 9세대를 점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동탄동 진구리는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는데, 윗마을에 파평 윤씨들이 많이 살아 예로부터 윤촌마을이라 불렸다. 2006년 당시 4세대가 확인되었다. 청요리에는 1950년대에 20세대까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2015년 조사에서는 8세대가 확인되었다. 청요리에 거주하는 파평 윤씨는 주로 영천부원군의 19~21세손이다.

한편,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화성 지역에 총 746세대 3,314명의 파평 윤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9,002명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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