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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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地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유호석 |
[정의]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옛 지도.
[개설]
진안 지역을 그린 고지도는 조선 시대에 전국도와 도별도가 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전국도는 조선 전국을 그린 지도이다. 비교적 정확하게 제작된 것으로는 『동여도』·『여지도』 등이 있다. 이 지도들은 휴대의 편의를 위하여 책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지방도는 도별 혹은 읍별로 지도를 정리한 것이다. 하나의 군현을 대상으로 그렸기 때문에 주로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진안 지역을 그린 고지도로는 비변사 도장이 찍힌 『호남 지도』와 『해동 지도』·『광여도』·『대동여지도』·『전라도 지도』 등이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제작된 군현의 지도들은 고을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그렸을 뿐만 아니라 방격을 사용하여 인근 고을과 동일한 축척을 보여 주고 있다. 대부분의 군현 지도들에는 지형지세, 읍치 공간의 관청이나 제사 경관, 각 촌락의 분포와 거리, 군사적 요충지, 재정적인 요소, 유교적인 교화에 필요한 각종 상징물 등이 중요하게 표현되는데, 진안 지역의 지도에도 물론 이 같은 특성이 잘 묘사되어 있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웹사이트에서는 이들 고지도를 DB로 구축하여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호남 지도』]
영조 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집으로 진안현과 용담현이 포함되어 있다. 진안현은 지금의 진안읍·상전면·부귀면·마령면·성수면·백운면에 해당하고, 읍치는 진안읍 군상리 일대에 있었다. 읍치 부분에는 관아 건물뿐만 아니라 대동고(大同庫), 진휼청(賑恤廳) 등의 고을 재정과 관련된 시설물도 그려져 있다. 고을 남쪽에는 마이산이 그려져 있다. 진안현 지도에는 고림사·고산읍 등 73개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용담현 지도에는 고산현·마이산 등 39개의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진안현 지도의 상단 여백에는 전답 총수와 민호(民戶)·각양 잡곡(各樣雜穀)·군향미(軍餉米)·군정(軍丁)·산천(山川) 등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다. 이 지도에 실려 있는 전답 총수는 3,471결 3부 9속이고, 호수는 6,048호이다. 전답 총수는 『해동 지도』에 기록된 것과 동일하지만, 『해동 지도』에서는 민호를 5,577호로 기록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해동 지도』]
연대·작자 미상의 지도책으로, 8책의 채색 필사본이다. 영조 연간에 작성된 도별 읍지를 모은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별 읍지를 보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지도책으로 보인다. 『해동 지도』에는 주요 관방도와 중국·일본·유구국의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중 제7책이 호남 전도로, 진안현의 지도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진안현은 지금의 진안군 진안읍·상전면·부귀면·마령면·성수면·백운면에 해당하고, 읍치는 진안읍 군상리 일대에 있었다. 이 진안현 지도에는 59개의 지명이 실려 있다. 진안현 지도의 상하 여백과 오른쪽 여백에는 원호(元戶)·전답(田畓)·군병 총수(軍兵總數)·산천(山川) 등 당시 진안현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주기(註記)가 적혀 있다.
[『광여도』]
『광여도』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전국 군현 지도집으로, 제3책의 호남도 중에서 진안현의 지도를 찾을 수 있다. 이 지도는 채색 지도로 19세기 초 진안 지역의 지리적 형태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분수계 지역이라는 진안의 지역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른 군현 지도에 비하여 산·고개·절·지형 등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또한 진안 지역 지도의 주기(註記)에는 민호(民戶) 5,577명을 비롯하여, 납미군질(納米軍秩)·납이필질(納二疋秩)·납일필질(納一疋秩)·각항곡물질(各項穀物秩)·논밭의 결수(結數)·창고 수 등의 순서로 당시 진안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적혀 있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인근 고을과의 경계 및 거리가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
1861년(철종 12)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수정판이 간행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전국 지도인 『대동여지도』에서도 진안현이 확인된다.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으로 만들어져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고 대량 생산의 길을 터놓았으며, 지도표(地圖標)를 써서 지도의 주기 내용을 간결화함으로써 고지도를 근대화시켰다. 또한 분첩절첩식으로 되어 있어 휴대하기 편하며, 지도를 확대·축소할 때에는 서양의 과학 기술을 사용하였다. 다른 어느 고지도보다 주기 내용이 많아 풍부한 정보량을 담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도로에는 10리마다 점을 찍어 표시하여 여행할 때 이정(里程)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지도에 실린 진안현·용담현 역내에는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에 실린 지명들이 기재되어 있다.
[『전라도 지도』]
1871년(고종 8)에 열읍지도(列邑地圖) 등상령(謄上令)이 내려지면서 1872년에 전라도 각 부·군·현·진에서 만들어 올린 채색 지도이다.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지도에서 산천·도로·봉대(烽臺)·창고·장시(場市)·면리·관읍(官邑)과 각 면(面) 지역 사이의 거리·경계까지의 거리 등이 표시되어 있다. 또 지도의 여백에는 건치 연혁·정도(程途)·산성·봉수·선척(船隻)·관방(關坊) 등이 기재되어 있다. 지역 표시는 면(面)까지만 밝힌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면 이하 리·동까지 표시하여 상세한 편이고,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도의 지도에 비하여 표기 양식이나 체제가 정연한 편이다. 이 지도집 중 진안현의 지도에는 가림촌(佳林村)·가막치(加幕峙)·가정동(柯亭洞)·강정촌(江亭村) 등 145개의 지명이 실려 있다. 진안현 지도의 상단 오른쪽에는 진안현의 건치연혁이, 하단 오른쪽에는 동서남북의 이정(里程)이 간략히 적혀 있다.
[의의와 평가]
진안 지역을 그린 고지도들은 대체로 19세기 후반의 것으로, 전국도나 군현도의 일부로서 제작된 것이다. 이 시기의 고지도들은 제작 시 지도 제작 전문가는 물론 화가와 풍수지리가를 참여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 산맥과 강줄기가 중요하게 그려졌다. 따라서 지도 자체가 곧 한 폭의 동양화였다. 진안의 지도에는 또한 당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주기가 적혀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진안의 지도는 시각적으로 구현된 지리지이자 백과사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