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314 |
---|---|
한자 | 葛龍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엽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갈산리와 용산리를 병합하고 각각 한 자씩 이름을 따 와 갈용리라 하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말 용담군 이남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갈산리와 용산리를 병합하며 진안군 정천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용담댐의 건설로 갈거·무거·조포만 남고 경내의 전 마을이 수몰되었다. 수몰 이주민들은 갈두 마을을 새로 조성하였다.
[자연환경]
갈용리는 북쪽으로 복두봉에서 구봉산, 절연재를 경계로 주천면 운봉리와 접경하고, 동쪽은 사기점골 고개에서 뻗어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모정리와 접경한다. 서쪽으로는 곰직이산에서 명덕봉으로 뻗어 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봉학리와 접경하고, 동남쪽으로는 용담호와 면해 있다.
복두봉 아래 골짜기가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중간에 국립 운장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 내동천 물은 갈거 마을과 무거 마을을 거쳐 남쪽으로 흘러 용담호로 들어간다. 구봉산 아래 골짜기 물은 동류하여 수암 마을에 이르러 절연재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합하여 흐르다 무거 마을에서 내동천과 합류한다. 전반적으로 골짜기가 좁아 농경지가 부족하다.
[현황]
갈용리는 정천면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3년 11월 30일 현재 면적은 21.61㎢이고, 인구는 117가구에 232명[남자 119명, 여자 113명]이 살고 있다. 갈두·무거·갈거·수암 등 4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지방도 795호선이 용담 호반을 따라 갈두 마을을 경유하고, 지방도 725호선이 갈거 마을과 수암 마을을 거쳐 남북을 관통한다. 무거 마을은 마을 도로로 연결된다.
수암 마을에는 삼국 시대 사찰인 천황사가 있는데,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7호인 천황사 대웅전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3호로 지정된 천황사 부도가 있다. 천황사 앞에는 수령 약 800년, 높이 18m, 둘레 6.2m의 전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천황사 앞 남쪽 산비탈로 500m 지점에는 남암사가 있다. 천황사의 말사로 조계종 제 17교구에 소속되어 있으며 남암사 바로 앞에는 수령 약 800년, 높이 34m 둘레 5.5m의 전나무가 천연 기념물 제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황사 바로 옆에는 융희 황제[순종]를 기리는 황단에 비석이 세워져 있고 해마다 황단제를 지내고 있다. 수암 마을 서산골 골짜기를 따라 산 정상[631m]으로 올라가면 봉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정상 주변에는 암석군이 있으며 그 주변에 이중으로 돌을 돌린 흔적이 남아 있다. 아마도 산성과 봉수를 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거 마을 동쪽 천변에는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수구막이와 휴계림의 역할을 한다. 안산[357m]에서 동쪽으로는 밭이 형성되어 있다. 밭 조성 과정에서 요지가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으며, 주변에 많은 양의 백자편이 흩어져 있는데 주로 사발과 대접이 주류를 이룬다. 마을 앞에는 당산 할머니라 부르는 입석이 있다. 입석의 크기는 120㎝, 넓이 50㎝, 두께 30㎝의 방형의 자연 입석이다. 음력 정월 초사흘날 새벽 3시에 제사를 지낸다. 제주는 마을 회의에서 선정하며 일주일 전부터 바깥출입이 금지되고 축문을 읽고 소지를 올린 뒤 마을 회관에 내려와 음복을 한다.
갈거 마을은 2001년 산림청에서 자연 휴양림을 개발하였다. 마을 앞에는 효자 손동현의 정려가 있다. 마을 입구에 2기의 돌탑이 있는데 19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철거된 적이 있지만 그 후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는 일들이 생기자 다시 돌탑을 세우고 거리제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