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77 |
---|---|
한자 | 廣州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입향 시기/일시 | 1725년 - 이우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로 입향 |
---|---|
입향지 | 광주 이씨 이우춘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
세거|집성지 | 광주 이씨 세거지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
성씨 시조 | 이집(李集) |
입향 시조 | 이우춘(李遇春) |
[정의]
이집(李集)을 시조로 하고, 이우춘(李遇春)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광주 이씨는 둔촌(遁村)이집(李集)을 시조로 한다. 이집 은 1347년(충목왕 3)에 문과에 급제하여 포은정몽주·목은이색 등과 교류하면서 신돈의 학정에 직소를 했다가 비위를 거슬려 포살령이 내리자 아버지 이당(李唐)을 업고 경상도최원도(崔元道)의 집에 피신하였다. 이후 신돈이 처형된 후 1387년에 봉순대부 판전교시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고향인 광주 둔촌동에 내려와 살면서 시문을 즐기다 시고(詩稿) 2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조선조에 증좌찬성에 임명되었다. 그 후손에서 다섯명의 정승과 여섯명의 판서, 일곱명의 공신이 나와 둔촌 인맥을 형성하였다.
[입향 경위]
광주 이씨로 진안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이우춘(李遇春)이다. 이우춘은 광릉부원군(廣陵府院君) 이극배(李克培)의 10세손으로 1725년(영조 1)에 공주에서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로 이주하였다.
[현황]
진안군 정천면 조림리 등지에 40여 세대가 살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10여 세대 30여 명이 살고 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