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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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海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본관 | 김해 - 경상북도 김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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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김해 김씨 김경원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신기리 |
성씨 시조 | 김수로왕 |
입향 시조 | 김경원(金鏡元) |
[정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김경원(金鏡元)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김해 김씨의 시조는 가락국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이다. 김수로왕은 42년(신라 유리왕 19) 금관 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九干)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으며,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비로 삼았다.
김해 김씨는 시조 수로왕의 12세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뉘는데,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 종파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그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김해 김씨는 신라와 고려 시대를 통해 많은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 갑족에 속하며,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삼현(三賢)으로 칭송 받는 김극일(金克一)·김일손(金馹孫)·김대유(金大有), 숙종 대 청빈하게 살면서 완인(完人)으로 불린 우의정 김우항(金宇杭), 이조 참판을 역임한 시문가(詩文家) 김현성(金玄成), 예조 판서 김조(金銚), 무장 김경서(金景瑞)·김완(金完), 학자 김자정(金自貞)·김덕승(金德承), 화가로 명망이 높은 김홍도(金弘道)·김양기(金良驥) 부자 등이 모두 김해 김씨 집안이다.
[입향 경위]
진안에는 판도판서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공파(三賢公派)가 대성을 이루고 있는데, 삼현 중에서 제 2현인 탁영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이 많이 살고 있다.
진안에 우거한 김해 김씨로는 고종대 진해에서 성수면 신기리로 들어온 김경원(金鏡元), 김일손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성수면 도통리로 들어온 김국경(金國京), 정조대 남원에서 동향면 행원으로 들어온 김국만(金國滿), 문민공 김견(金堅)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으로 들어온 김국철(金國哲), 도사 김린(金璘)의 후손으로 1864년(고종 1)에 무장에서 백운면 백암리로 들어온 진사 김기노(金基魯), 학성군 김완(金完)의 후손으로 1904년(광무 8)에 임실에서 백운면 내동으로 들어온 김도일(金道一), 학성군 김완의 후손으로 전주에서 백운면 남계리로 들어온 김문권(金文權), 절효공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고종대 부여에서 안천면 노성리 노채로 들어온 김문배(金文培), 김일손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부귀면 두남리로 들어온 가선대부 김사봉(金泗鳳)이 있다.
김일손의 후손으로 철종대 남원에서 마령면 안방리로 들어온 김선화(金先化), 김일손의 후손으로 철종대 남원에서 마령면 안방리로 들어온 김선우(金璿宇), 김일손의 후손으로 1894년(고종 31) 운봉에서 백운면 원산리로 들어온 김성두(金星斗), 서울에서 부귀면 신정리로 들어온 행부호군 김수갑(金壽甲)이 있고, 1803년(순조 3)에 전주에서 진안읍 은천리로 들어온 김일손의 후손 김수환(金守煥), 고종대 금산에서 진안읍 물곡리로 들어온 김일손의 후손 김양업(金梁業), 철종대 무주에서 진안읍 군상리로 들어온 병조 좌랑 언경(彦慶)의 후손인 김억갑(金億甲), 김일손의 후손으로 연산에서 동향면 행원으로 들어온 김영식(金永植),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으로 임실에서 부귀면 오산리로 들어온 김예봉(金禮奉), 김녕군 김목경(金牧卿)의 후손으로 1908년(융희 2)에 남원에서 백운면 대전리로 들어온 김익배(金益培), 판도판서 김관(管)의 12세손으로 선조대 산청에서 정천면 갈거리로 들어온 김종복(金宗福), 김일손의 후손으로 산청에서 부귀면 봉암리 봉암으로 들어온 김종수(金宗洙), 김녕군 김목경의 후손으로 1936년에 무주에서 진안읍 군상리로 들어온 김종관(金鐘管), 김일손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백운면 덕현리로 이주한 김창룡(金昌龍), 김일손의 후손으로 금산에서 부귀면 수항리로 이주한 김창철(金昌喆), 순조대 삼례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들어온 김태희(金泰熙), 김일손의 후손으로 고종 대 남원에서 백운면 노촌리로 이주한 김해두(金海斗), 김일손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이주한 김현명(金顯明), 김일손의 후손으로 남원에서 백운면 대전리로 옮긴 김현우(金顯瑀), 전주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옮긴 음죽 현감을 지낸 김현택(金顯澤) 등이 있다.
[현황]
진안군 마령면 안방리, 백운면 남계리, 백운면 내동, 백운면 노촌리, 백운면 대전리, 백운면 덕현리, 백운면 백암리, 백운면 원산리, 부귀면 두남리, 부귀면 봉암리 봉암, 부귀면 수항리, 부귀면 신정리, 부귀면 오산리, 성수면 도통리, 성수면 신기리, 성수면 좌포리, 안천면 노성리 노채,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 정천면 갈거리, 진안읍 군상리, 진안읍 물곡리, 진안읍 은천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김해 김씨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에 129만 5080호에 412만 4934명, 전라북도에 5만 5704호에 17만 3712명, 진안에 946호에 2,856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기적보, 정려각 등이 진안군 부귀면 두남리 원두남 숭조재 앞, 성수면 좌포리 원좌포 좌포 교회 옆 도로변, 진안읍 반월리 원반월 동쪽 산 기슭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