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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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巨石里舍人岩鎭安李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집성촌 | 거석리 사인암 진안 이씨 집성촌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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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동족 마을 |
가구수 | 5가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에 있는 진안 이씨 집성촌.
[개설]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사인암 마을은 진안 이씨에 의해 형성되었다. 진안 이씨의 인구는 2000년 기준으로 전국 943호에 312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라북도에는 192호에 643명, 진안군에는 58가구에 156명이 거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거석리는 부귀면에 속한 법정리로, 본래 진안군 내면 지역으로 큰 바위가 있으므로 거석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화곡, 사인암, 금평, 마곡과 삼북면의 벌리 일부를 병합하여 거석리라 하였다.
사인암은 마을 뒷산이 사자형국이고 큰 바위가 있어 사인암이라 불렀다. 본래 사자 사(獅)자를 썼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집 사(舍)를 쓰고 있다. 고려 때 사인이란 벼슬을 했던 사람이 살고 있어서 ‘사인(舍人)’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진안 이씨 중 진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직제학을 지낸 이교(李校)이다. 이교는 고려 후기 보문각 직제학이었다가 홍무 연간[1368~1398]에 진안에 귀양 와서 스스로 처사라 칭하였다. 이후 이교의 자손들이 진안에 거주하게 되었다. 진안 이씨는 사인암 외에 상거석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자연 환경]
사인암 마을은 운장산 남쪽에 솟은 갈미봉을 주산으로 하고 마을 앞으로 정자천을 흘려보내는 전형적인 배산 임수의 입지를 갖추고 있다.
[현황]
과거에는 진안 이씨가 11가구 정도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각성바지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진안 이씨가 2010년 기준으로 5가구로 주요 성씨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