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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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天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고려 후기 진안 용담 출신 무신.
[활동 사항]
고천백(高天伯)[?~?]은 고려 때 원종과 충렬왕 때에 사신으로 원나라를 내왕하면서 외교를 담당하였다. 일정한 무관직을 맡은 바 없고 비록 계급은 종3품 대장군에 머물렀으나, 원의 고려 간섭기 초기에 사신으로 원을 내왕하면서 대원 외교 관계 정립에 공을 세웠다. 특히, 1274년(원종 15) 장군으로 판각문사(判閣門事) 이신손(李信孫)과 함께 원에 신년 하례 차 갔을 때 원의 요구 사항 가운데 권농사(勸農使) 파견에 관한 일만은 고려에 위임해 줄 것을 청하였다.
1275년(충렬왕 1) 원에 가서 고려왕의 친조(親朝)를 청하였으나, 원은 오히려 고려왕의 친조를 정지한다고 통보하였다. 또 1276년(충렬왕 2) 홀라대(忽刺輓)와 함께 원에 가서 국서를 전해, “고려에서 40여 인이 모여 다시 강화로 들어가기를 계획하였다.”는 익명의 투서가 무고임을 고하였다. 그 뒤 장군에서 대장군에 올랐고, 1283년(충렬왕 9)에는 하정사가 되어 원에 다녀왔다. 그 밖에도 공주의 병 치료를 위한 의원의 요청, 고려왕의 친조 정지, 신정 하례 등을 위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원을 다녀왔다.
『동국여지승람』 용담편 인물에 ‘벼슬이 판삼재(判三宰)에 이르다.’라고 되어 있고, 『여지도서』 용담편 인물편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