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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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孝南 |
이칭/별칭 | 국진(國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정민 |
[정의]
조선 후기 진안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진(國珍).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직제학 김작(金綽)의 6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진사 김신경(金信經), 증조할아버지는 김택(金澤)이다. 할아버지는 김윤적(金允迪), 아버지는 통정 김윤보(金潤寶)이며 외할아버지는 이광태이다. 장인은 참봉 이홍이다.
[활동 사항]
김효남(金孝南)[?~1636]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있었고, 1636년(인조 14)에 선전관을 지냈다. 『호남 절의록』에 의하면 병자호란 때에 왕을 호종하다가 강화도에서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라의 일이 이에 이르렀으니 신하된 자로 어찌 삶을 도모하랴.’라고 하였다 한다. 전투에서 청군 백명을 죽이며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순절하였다.
[묘소]
『호남 절의록』에 의하면 청의 군사가 시신을 물에 던져버려 시신을 수습할 수 없게 되어, 풀을 묶어 시신을 만들어 진안현 일서면 수명당 갑좌에 예장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