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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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성암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 김치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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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김치삼 삼남 의병대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09년 - 김치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김치삼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김치삼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삼남 의병대 의병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치삼(金致三)[1872~1909]은 진안군 주천면에 태어났다. 1907년 9월에 거병한 유지명(柳志明)이 이끄는 삼남 의병대에 가담하여 약 2년 동안 용담·금산·은진 등지를 잠행하면서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07년 10월 3일 밤, 의진 30여 명이 심상의·노원섭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총검을 휴대하고 금산읍을 습격하였을 때 동지 정성일 등과 함께 선두에서 분전하였다. 그 결과 일본인 오이시쿠로 등 2명을 사살하고 충시모 외 7명과 일본에 아부하는 한국인 1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또한 우편취급소와 세무서의 건물, 일본인 가옥 9동을 불태우고 양총 2정과 탄환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의병 활동 중 1909년 1월 일본군 헌병에게 피체되어 같은 해 7월 23일 광주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모살·강도 및 방화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8월 28일 대구 공소원에서 기각되고 동년 9월 14일 대심원에서 상고가 다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건국 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