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877 |
---|---|
한자 | -肯構堂遺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서형국 |
간행 시기/일시 | 1899년 - 『긍구당유고』 간행 |
---|---|
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
소장처 | 연세 대학교 학술 정보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신촌동 134] |
소장처 |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신당동 1000-2] |
소장처 | 한국 국학 진흥원 도서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서부리 220] |
소장처 |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균관로 25-1[명륜3가 53] |
소장처 | 전주 대학교 중앙 도서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천잠로 303[효자동2가 1080] |
소장처 | 성암 고서 박물관 -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
성격 | 문집 |
저자 | 김중정(金重鼎) |
간행자 | 김태현(金泰鉉)|김상현(金尙鉉)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20자 주쌍행 |
규격 | 세로 32.7㎝, 가로 22.1㎝[목판]|세로 23.0㎝, 가로 16.9㎝[반곽] |
어미 | 내향 2엽 화문 어미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은거했던 조선 후기 학자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
[개설]
『긍구당유고(肯構堂遺稿)』는 긍구(肯構)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이다. 그의 9세손 김태현(金泰鉉)과 김상현(金尙鉉) 등이 모아 1899년에 간행하였다. 책은 권의 구분이 없는 1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서(序)와 목록(目錄)의 뒤에 상량문(上樑文)과 시(詩)가 실려 있으며, 부록으로 행장(行狀)과 묘갈명(墓碣銘)을 싣고 발(跋)이 실려 있다.
[저자]
김중정(金重鼎)[1602~1700]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긍구(肯構)이다. 거주지는 황화방(皇華坊)이었으나 뒤에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서 은거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내금위를 지낸 김충립(金忠立)으로 그의 둘째 아들인 김한룡(金翰龍)이 김중정의 아버지이다. 김한룡은 일찍 죽은 김인수(金仁秀)에게 양자로 가서 대를 이었다. 어머니는 연씨이다.
일찍이 성리학에 전념하여 늘 정이천·정명도와 주자의 전서(全書)나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 및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을 갖추어 두었다고 한다. 1654년에 주자천 변의 와룡암 위에 장서각을 세워 후학을 가르치며 일생을 마쳤다.
[편찬/간행 경위]
『긍구당유고』는 김중정의 9세손인 김태현(金泰鉉)과 김상현(金尙鉉) 등이 1899년에 김중정의 글을 모아 권의 구분이 없이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문집이다.
[형태/서지]
책은 세로 32.7㎝, 가로 22.1㎝의 한문 문집 한 책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 세로 23.0㎝, 가로 16.9㎝로 10행 20자 주쌍행(註雙行)이며, 내향 2엽 화문 어미를 갖추었다.
국립 중앙 도서관을 비롯하여 연세 대학교 학술 정보원,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한국 국학 진흥원 도서관, 성균관 대학교 존경각, 전주 대학교 중앙 도서관, 성암 고서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성암 고서 박물관 소장 자료는 2권 1책으로 된 석판본이다.
[구성/내용]
『긍구당유고』는 표지 안에 긍구당유고서(肯構堂遺稿序)에 이어 긍구당유고집(肯構堂遺稿集) 목록이 있고, 그 뒤에 긍구당유고집의 본문이 실려 있다. 서(序)는 ‘성삼십칠년경진(聖三十七年庚辰)[1880]’에 김상현이 쓴 것으로, 그 뒤를 이어 상량문(上樑文), 오언 고시(五言古詩), 오언 절구(五言絶句), 오언 율시(五言律詩), 칠언 배율(七言排律), 칠언 절구(七言絶句), 칠언 율시(七言律詩)가 실려 있다. 부록(附錄)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발(跋)은 김태현과 김대현(金大鉉)이 쓴 것으로 김대현의 발문에는 ‘광무삼년기해(光武三年己亥)[1899]’의 주기가 달려 있다.
[의의와 평가]
『긍구당유고』는 진안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성리학적 도를 실천했던 김중정의 세계관을 가늠할 수 있는 문집이다. 조선 후기에 진안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했던 문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문집은 지방사 재구성의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문집 속에 수록된 시문들은 문학적 성격이 높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