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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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胎靈山說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한석수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태령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태령산 설화」는 김유신(金庾信)[595~673] 장군의 태를 묻을 때 하늘에서 신인이 내려와 김유신 장군의 태를 가지고 갔다 하여 태실이 있던 산을 태령산(胎靈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김서현(金舒玄) 태수는 태를 묻은 주위에 성을 쌓게 하였는데, 지금도 태를 묻은 자리와 태아의 모습으로 쌓은 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채록/수집상황]
2004년 진천상산고적회에서 간행한 『진천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뒤에 계양마을 뒷산에 태를 묻었는데, 그 산 이름이 태령산이다. 임금 아들의 태를 묻은 산을 장태산(藏胎山), 태장산(胎藏山), 태봉산(胎封山), 봉태산(封胎山) 등으로 부르지만 예외적으로 이곳만은 태령산이라고 부른다. 신령 ‘영(靈)’자가 붙은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또 ‘영’자를 붙인 산도 오직 여기뿐이다.
김서현 태수는 아들의 태를 뒷산에 묻도록 부하에게 명하였다. 부하들이 산에 올라가 태실(胎室)을 만들고, 태를 묻기 위해 태실이 있는 곳으로 가서 태실에 놓자마자 갑자기 하늘에서 영롱한 무지개가 태가 있는 곳으로 뻗치더니 하늘에서 선인이 내려와 태실 옆에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무지개의 빛도 서서히 사라지고 없었다.
부하들이 태실로 가보니 그곳에서는 향기가 진동하였다. 태를 놓았던 곳을 살펴보자 태가 보이질 않았다. 신인들이 태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태수에게 이러한 사유를 고하자 태수는 신인들이 태를 가지고 갔다 하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라 하며 웃는 낯으로 그대로 태실을 묻도록 하였다.
그 후에 태를 묻은 주위에 성을 쌓도록 하였으니, 지금도 태를 묻은 자리와 성까지 남아 있다. 성을 쌓은 규모는 매우 크며, 돌은 연장을 대지 않은 자연석 그대로이다. 경사가 심한 곳은 모두 무너졌지만 평평한 곳은 그대로 남아 있다. 천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지금까지 옛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하다. 성은 지형을 따라서 쌓았는데 높은 곳은 6~7층, 낮은 곳은 3~4층으로 되어 있다. 성의 형태를 살펴보면 태아의 모습으로 쌓았다. 1400년 전에 태를 묻었기에 태아의 모습으로 성을 쌓은 그 뛰어난 과학적 두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김유신 장군의 태를 신인이 내려와서 하늘로 가지고 갔다 하여 산 이름을 태령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을 보면 이 산을 태령산 또는 길상산(吉祥山)이라 한다고 적혀 있으며, 『택리지(擇里志)』를 보면 태령산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진천의 명산으로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티프 분석]
「태령산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승천한 김유신 장군의 태’이다. 「태령산 설화」는 김유신 장군의 태를 선인(仙人)이 와서 하늘로 가져갔다는 신이담이다. 역사상 훌륭한 업적을 남긴 위인의 탄생과 행적을 신비한 내용으로 분식(粉飾)하려는 민중에 의해 꾸며진 일종의 영웅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