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중기의 문신 최영경(崔永慶)의 사제비(賜祭碑). 수우당(守愚堂) 최영경[1529~1590]은 정여립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옥사한 다음 해인 1591년(선조 24)에 그가 무죄였음이 판명되자, 1594년 선조가 최영경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제문을 내려주었다. 1821년(순조 21) 이 제문을 돌에 새겨 비석을 세웠다. 원래 1821년 당시 남명(南冥)...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위치한 송정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진양하씨 송정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들로서 분재기(分財記), 소송입안(訴訟立案), 호구단자(戶口單子), 토지매매문서(土地賣買文書), 소지(所志), 등장(等狀), 품목류(稟目類), 완문(完文), 절목(節目), 전령(傳令), 제음(題音), 초사(초사), 수기(手記), 위장(慰狀), 만장(輓狀), 제...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인물들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1번지 촉석(矗石)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m이며 너비는 0.92m, 두께는 0.21m이다. 비신은 수성암(水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세운 단. 임진왜란 진주성 1차 전투(1592년 10월)에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비롯한 아군 3,000여 명이 왜군 2만여 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물리쳤다. 이듬해인 1593년 6월 진주성 제2차 전투 때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黃...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있는 청주한씨 판서공파의 고문서들. 교지 2점과 효행정려소지 9점 등 모두 11점이다. 교지 2점은 각기 조선 인조 16년(1638)에 작성 제수된 한성원(韓聖源)의 정이품 당상관(堂上官) 교지와 조선 효종 8년(1657)에 작성 제수된 한치범(韓致範)의 종이품 당상관 교지이다. 제작 시기는 오래되었지만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효행정려소지 9점은 진...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에 있는 청파 이륙(李陸)[1438~1498] 선생의 문집 목판. 청파문집 목판은 46매로 그 규모는 가로 34.2㎝, 세로 21.5㎝이다. 판당 20행이며, 한 행당 글자 수는 20자이다. 고성이씨 문중에서 영월재(永月齋)를 지어 보관하고 있다. 청파문집은 1512년(중종 7)에 아들 이영(李岭)이 편집하고 간행했으며, 1853년...
-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하경휘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경휘의 호는 매헌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따라 상주(尙州)에 갔다가 왜병의 칼에 죽게 되자 아버지를 안고 적의 칼을 맞아 같이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적이 먼저 아버지를 치려 하자 하경휘가 양팔을 벌려 아버지를 막고 칼을 막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아버지는 충...
-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하진(河晉)[1597~1658]의 시문과 그에 관한 글을 모은 것. 하진의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이다. 1624년(인조 2)에 진사가 되고 증광시(增廣試)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다. 사재감군직장(司宰監軍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늙으신 부모를 봉양하느라 취임하지 않았으며,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사간원 정언(正言),...